[미술,영화,사진작품]

Adolf Hitler(아돌프 히틀러)의 그림

scholle 2009. 2. 11. 02:26

[아돌프 히틀러의 그림]

 

오스트리아 인 강변의 브라우나우에서 태어남

아버지 : 알로이스 히틀러 (1876년까지 알로이스 시클그루버라는 이름을 사용 세관관리(1837~1903)

어머니 클라라, 처녀때 이름은 푈츨(1860~1907)

2명의 동생 에드문트(1894~1900),

파울라 (1896~1960)

이복형제 알로이스(1882~1956), 앙겔라(1883~1949)

 

1892년 : 아버지의 전임으로 파사우로 이주

1895년 : 4월 트라운 강변의 람바흐 근교 하펠트로 이사함.

1895 ~ 1896년 : 람바흐 근교에 있는 피슐람에서 초등학교 1학년

1896 ~ 1898년 람바흐의 수도원 학교에서 초등학교 2, 3학년

1897년 : 람바흐로 이주 1898 ~ 1900년 1898년 레온딩으로 이주.

거기서 초등학교 4,5학년

1900 ~ 1904년 린츠에서 실업학교 1-3학년, 1학년 낙제.

1903년 : 1월 3일 아버지 65세로 사망

1904 ~ 1905년 슈타이어에서 실업학교 4학년.

 

그곳에서 하숙하다 병에 걸림.

16세의 히틀러는 졸업을 못하고 학업을 그만둠.

가족은 린츠에 거주 아우구스트 구비체크와의 만남.

바그너에 몰두

 

1906년 :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1차 체류

1907년 : 9월 빈에 있는 조형예술 아카데미의 일반 화가학교에 입학시험(낙방)

12월 어머니 47세로 사망.

1908년 : 9월 예술 아카데미에 다시 낙방

1908 ~ 1913년 빈에 거주함. 숙소를 자주 바꿈.

그러나 1909-13년 20구역의 멜데만 가27번지 남자 기숙사에서 계속 거주.

상속,고아연금, 자신이 그린 수채화와 삽화(대부분 건축물)판매 등으로 생활비를 충당.

일에대해 대체적으로 수동적이고 오페라를 자주 관람함.

독서를 통해 여러가지 학문분야 독학

 

모든 세계사 책을 보면 반드시 나오는 한 사나이,

전쟁에 미친 사나이 하면 떠오르는 한 사나이,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의 모든 것을 알아보자.

 

아돌프 히틀러 Adolf Hitler(1889.4.20~1945.4.30)

아돌프 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Braunau am Inn 에서 4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1903년에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

1905년에 히틀러는 비엔나의 고아원에서 지냈는데,

그는 미술 지망생이였다.

 

그는 비엔나 미술학원에 2번 지원했지만 2번 모두 낙방하였다.

이때 만약 그가 비엔나 미술학원에 합격했더라면,

세상이 달라졌을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후, 1907년에는 그의 어머니 까지 유방암으로 사망해

어머니의 재정직 지원이 끊겨, 그는 돈이 부족했다.

결국 그는 비엔나에서 남들의 그림을 엽서에 배껴가며 힘들게 살아갔다.

 

 

히틀러의 말에 따르면,

그 당시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던 비엔나에서

그가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추측하건데...

그가 반 유대주의자가 된 이유는 비엔나에서

반유대주의자였던 Lanz von Liebenfels 의 글에서나,

Christian Social 당의 창시자 이자,

비엔나 주지사였던 Karl Lueger, 작곡가인 Richard Wagner,

그리고 '로마에서 벗어나자' 운동의 지도자 Georg Ritter von Schnerer 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추정한다.

 

또한 히틀러는 마틴 루터 킹의 저서

'on the Jews and their Lies' 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히틀러는 제 16 바바리아 연대에서 적들의 포화 속에 복무했다.

군 복무 도중에 그는 틈틈히 군대를 위해 만화를 신문에 연재했다.

1918년 10월에는 적들의 겨자가스 공격을 받고

일시적으로 장님이 되어서 야전병원에 있었다.

 

영국의 심리학자 David Lewis 와 Bernhard Horstmann 에 따르면

그 때 장님이 되었던 일로 그가 히스테릭하게 전환했다고 주장했다.

 

히틀러는 이 때 일로 그의 인생은

오직 '독일을 구원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마음 먹었다고 한다.

비록 1932년 까지 히틀러는 독일 시민권자가 아님에도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독일을 찬양하였고,

독일의 열정적인 애국자가 되었다.

 

다른 독일의 민족주의자들 처럼 1918년에 히틀러는

독일의 항복에 대해 불온분자나 공산주의자들 때문에 일어난 일로 여겼다.

그 후 그들은 November Criminals 때에 처단되었다.

 

"전쟁광 히틀러의 그림들"

화가 지망생이었던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의

집배원 초상화가 영국에서 약 950만원에 거래돼 화제가 되고 있다.

 

히틀러는 화가의 길을 걷고자 빈 미술학교에 응시했으나

2번이나 거절 당했지만 자신의 천부적 예술적 재능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것보다 건축물 뎃상을 잘했던 히틀러는

그림엽서를 보고 빈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시작했다.

 

그러나 꼼꼼하고 세밀함이..."

반드시 대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었다.

수채화로 그린 광장 풍경화를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이나

막 결혼한 젊은 부부들에게 풍경화를 파는것 등은...

아주 보잘것 없는 수입을 마련해 주던 정도였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어려운 생활을 하던 히틀러는

군대에 자원 입대하면서 정치가로의 인생을 걷게된다.

 

어쨌든 벨기에의 한다락방에서 70년만에 발견된

그림들이 새삼 대두되고있는 이유는...

예술적 가치보다는 인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주목받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Was ist eigentlich ein Hitlerbild? Ein Konterfei oder ein Aquarelle eines

“Künstler”namens Adolf Hitler? Ein Gemälde,

das Adolf Hitler als Soldat während des Ersten Weltkriegs mit Wasserfarben gemalt haben soll,

fand Medienberichten zufolge bei einer Auktion in Südengland keinen Bieter.

Eine Frau aus der Grafschaft Hampshire wollte das Gemälde namens

 

“Die Kirche von Preux-au-Bois”,

das sie von ihrem Sohn zum Geburtstag bekommen hatte,

wegen des Malers unbedingt wieder loswerden und bot es zur Auktion an.

Es fand sich aber niemand, der bei der Versteigerung im südenglischen

das Mindestgebot von 2.800 Pfund (knapp 3.350 Euro) abgeben wollte,

 

wie die Zeitung Daily Telegraph< am Donnerstag berichtete.

Der Sohn der Frau hatte das Bild im Jahr 2006 noch für 10.500 Pfund bei einer Auktion ersteigert.

Erst nach der Auktion meldete sich ein anonymer Interessent,

der das Bild für eine nicht genannte Summe erwarb.

Hitler soll das Bild der nordfranzösischen Kirche gemalt haben,

als er als Soldat im französisch-belgischen Grenzgebiet stationiert war. Eine undatierte Zeichnung des Disney-Charakters Pinocchio, von der William Hakvaag - Direktor eines Kriegsmuseums im nördlichen Norwegen - glaubt, dass sie während des Zweiten Weltkriegs von Adolf Hitler gemalt wurde.

 

창조적인 에너지가 좌절 되었을때

인간은 파괴적으로 변화 된다고 합니다.

화가로서 일생을 살았다면

히틀러의 일생은 좀더 보람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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