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onio Vivaldi Conncerto for Cello in D minor RV401
1. Allegro non molto
2. Adagio
3. Allegro ma non molto
탄탄한 기교와 천부적 감수성…
자클린 뒤프레 이후 최고의 여류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 이후 클래식계는 로스트로포비치, 다비드 게링가스,
미샤 마이스키, 요요마 등으로 대변되는
남성 첼리스트의 전성시대를 맞게 된다.
자클린을 대신 할 만한 세계적 여류 첼리스트 부재로 인한 공백은
대중에게 점점 더 첼로=남자악기 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이러한 시기에 오프라 하노이의 등장은 뛰어난 연주자의 발견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했다.
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중성적, 또는 남성적 특징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표현력으로 철옹성 같은 금녀의 벽을 허문
연주자 오프라 하노이.
세계 무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캐나다 출신 여성 첼리스트 오프라 하노이는 특히 아름다운 용모와
뛰어난 음악성으로 데뷔 때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1965년,
이스라엘 하데라에서 출생하여 6세때 캐나다로 이민했고,
음악 애호가인 아버지와 피아노 교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7살 때부터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하노이는 로스트로포비치, 피에르 푸르니에, 자클린 뒤 프레,
블라디미르 오를로프 등 첼로의 명인들에게 지도를 받는 행운을 누렸고,
10세 때 캐나다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면서 데뷔한 이후,
장학금으로 런던으로 유학, 뒤
프레의 스승이기도 했던 윌리엄 프리스의 지도를 받았다.
1978년 몬트리올 교향악단 콩쿠르,
이듬해 캐나다 음악 콩쿠르에서 각각 우승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1980년 영국 무대에 데뷔, 1982년 카네기 홀에서
성공적인 미국 데뷔 무대를 가졌다.
연주하는 패션 모델,
오프라 하노이 1983년에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국제 연주가 연맹(International Concert Artists Guild) 콩쿨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18세 때는 Musical America 誌에서 주는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함으로
연주가로서의 탄탄한 입지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오프라 하노이는 16세 때"아리오소"라는 앨범으로 데뷔한 후
지금까지 40여 개 이상의 솔로음반을 발표해 왔다.
또한 오펜바흐의 첼로협주곡 G장조, 비오티 첼로협주곡 C장조,
비발디 첼로협주곡 등을 비롯한 수많은 곡들을 세계초연 했으며,
일본 천황, 왕세자, 영국의 찰스 황태자,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앞에서도 뛰어난 연주로
전 세계 명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문필 활동을 하며 에세이집을 발표하기도 하고,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보기 드물게 섹시함을 강조하는 의상과
헤어스타일 등으로 "연주하는 패션모델”이란 닉네임을 얻으며,
오히려 이런 음악 외적 활동,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감각으로 인해
음악성을 의심 받기도 했었다.
일례로 비발디 협주곡집이 나왔을 때의 일이다.
이 앨범의 자켓 사진은 자주색 드레스를 입은 하노이가
첼로를 왼팔로 끼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포즈의 것이었는데,
정작 앨범의 내용물 보다 자켓으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의 손이 첼로 위에 놓인 모양이 도발적이라느니,
첼로를 양다리 사이에 놓아두고 손으로 애무하고 있다느니 하는 구설수가 오간 것.
이에 대해 오프라 하노이는 격한 어조로 항변한다.
‘첼로를 위해 태어난 여신,
신이 선물한 재능' -NewYork Times- ‘오프라 하노이,
세계를 아찔하게 하다' -The Times-
“특별히 못생긴 데가 없는 젊은 여자로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나는 대다수의 남성 연주자들 보다 훨씬 더 고된 투쟁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내가 보기에 그 사진은 다소 고풍스런 드레스를 입고 첼로를 든
젊은 여인의 모습이 담긴, 한폭의 아름다운 빅토리아 시대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가끔 나는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매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에
작은 코안경과 볼품없는 옷을 걸친 모습의 포스터를 만들어
그런 사람들 앞에 들이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 Ofra Harnoy(1993 '객석' 오프라 하노이 특집기사 중) 돌이켜 볼 때
이러한 지나친 관심과 편견 또한 그녀가 극복해야 하는 과제였다고
고백하는 오프라 하노이. 크게 보면 이것은 오프라 하노이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특수성은 오랜 세월동안 여성으로 하여금
첼로와 쉽게 조화하지 못하게 했다.
그 특수성이란 다리 사이에 악기를 끼고 연주해야 한다는 것.
이 악기에 대한 여성의 금기가 깨진 것은 19세기부터 이지만,
그러한 성적인 성향은 여전히 남아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악적 성과는 크다.
그녀의 외모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날로 성숙해가는 그녀의 연주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구체적인
꼬투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오히려 그녀의 테크닉은 '초자연적으로 성숙한',
그녀의 소리는 '크고 사랑스러운',
그 녀의 해석은 '우아하고 정열적인 것'으로 수식된다.
또한 뛰어난 기교와 풍부한 서정성에 더해
오프라의 음악에는 아고긱 (agogics 속도법)의 적절한 사용으로
독특한 색채가 감돈다.
오늘날의 그녀는 또 하나의 리오나 보이드가 아닌,
글렌 굴드 이후 가장 탁월한 캐나다 연주자로 평가 받고 있다.
[Bochum:scholle/23.08.2010]
'Antonio Vivaldi (1678∼174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발디 / 첼로 협주곡 가단조 RV. 418 (0) | 2011.05.11 |
---|---|
비발디 / 첼로협주곡 B 단조 RV.424 - Pieter Wispelwey.Cello (0) | 2010.08.28 |
비발디 / 첼로협주곡 RV.413 /Antonio Vivaldi, (1678∼1741) (0) | 2010.02.23 |
"비발디 / 바이올린 협주곡 E장조 '연인 (Venice Baroque Orchestra) (0) | 2009.11.10 |
Piccolo Concerto in C major, RV.443 (0) | 2009.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