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1797 - 1826)
절정에 오르게 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실제로 피아노 이외의 악기 연주나 지휘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적인 직관에 의하여
오케스트라를 매우 맑고 균질한 색채와 감탄할 만한 표현의 평형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Gunter Wand (1912 - 2002)
독일 태생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귄터 반트는 브루크너의 명해석자로 이름이 높았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1912년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엘버펠트(Elberfeld, 지금의 부퍼탈)에서 태어났다.
쾰른 음악대학과 뮌헨 음악대학에서
필립 야르나흐(Philipp Jarnach)에게 작곡을,
프란츠 폰 회슬린과 파울 바움가르트너(Paul Baumgartner)에게 피아노를 사사했다.
지휘는 거의 독학하였으나
정통 독일 레퍼토리의 지휘방식을 공부하였다.
1939년 쾰른 오페라극장 수석 지휘자로 있었고,
그뒤 1944년부터 얼마 동안
잘츠부르크 오페라극장의 악장으로 있었다.
1947년, 다시 쾰른으로 돌아와서
유서깊은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Gürzenich Orchestra)
수석지휘자와 함부르크방송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부터 비스바덴 오페라극장 지휘자를 겸임하면서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파리 라무뢰 관현악단 등
세계 굴지의 오케스트라를 객연하였다.
그는 슈베르트,베토벤,브람스,브루크너 등
독일 고전파와 낭만파 정통 레퍼토리를
19세기 독일계보를 잇는 객관주의적 방식으로 해석하여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82년 귄터 반트가 70이 되었을때
클라우스 텐슈테트의 후임자로써 NDR(북독일 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임을 받으면서 자신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겨우 5년 뒤에 그를 명예 지휘자로 만들었다.
연주회장에서 관객들은 많은 위험한 순간들을 느꼈었다.
반트가 부축을 받아 조심스럽게 지휘대쪽으로
걸어나올때가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번 그 지휘대에 서면 그의 몸은 단단해 졌다.
긴 팔의 근육들은 탄력이 붙었다.
그리고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처럼
지휘대에서 그는 그렇게 음악 안에 있었다.
이처럼 반트로부터 브루크너를 들은 사람은
그 들려진 음악이 평생 기준이 된다.
노쇠한 육신의 한계를 초월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찬연히 불타올랐던 그의 위대한 예술혼은 거장이
일평생에 걸쳐 갈고 닦았던 브루크너의 앨범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이 빛날수록 그 뒤에 남는 그늘 또한 크다.
거장(巨匠) 지휘자의 시대가 가고 있다.
1996년 8월,세르주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와
라파엘 쿠벨릭(Rafael Kubelik)이 긴 그늘을 남기며
사라지면서 거장 시대의 황혼을 더욱 짙게 했었다.
귄터 반트(Günter Wand)는 그 황혼녘에 아직도 찬란한 빛을 던지며 거장의 맥을 잇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대중적 인지도를 제쳐둔다면,
반트는 아마도 게오르그 솔티(Georg Solti)와 동렬에 놓일 만한
유일한 거장일 것이다.
[Bochum:scholle/19.08.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