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D, Shostakovich (1906~1975 )

쇼스타코비치 / 로망스

scholle 2013. 2. 5. 17:31

Suite from 'the gadfly' Op.97a

쇼스타코비치 / 로망스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1906~1975)

'Romance' Suite from 'the gadfly' Op.97a

 

쇼스타코비치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이곡은 쇼스타코비치가 원래 'The Gadfly

( 등에:소,말등의 가축에붙어 괴롭히는 곤충)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작곡된 곡입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합스부르크 통치하에 있던 이탈리아에서의 한 혁명가를 비유한 것이었는데,

쇼스타코비치에게는 소비에 트 체제에 그칠줄 모르고 반항하던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좋아했을지는 모르지만

영국에서는 한 때, 템즈 텔레비젼 시리즈 " Reilly , Ace of Spies" 에

이 로망스 멜로디가 쓰여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듯한 슬픔에 젖게 만드는 곡입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댄스/필름 앨범 쇼스타코비치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줄담배를 연달아 피워대는 탄압받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기 십상입니다.

 

이러한 인상은 여러 일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의 고단했던 그의 삶의 여정 때문이기도 하고,

또 거대하고 격렬하면서도 어딘지 억눌린 듯 비틀린 유머로 가득한

그의 교향곡들이 주는 느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쇼스타코비치는 엄청난 양의

소위 '가벼운' 음악의 작곡자이기도 합니다.

오페레타나 발레, 영화음악 등의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덜 진지한 음악을 일컫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진지함과 희유성이라는 두 가지 면모의 쇼스타코비치가 있는 것입니다.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익살스럽고 위트에 찬 패러디가 있고,

때로는 씩씩한 리듬에 호쾌한 행진곡이 울려 퍼집니다.

 

눈부신 관현악의 향연에 빠져 들다 보면,

세 장의 음반이 끝날 무렵에는 그동안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를

이 천재 작곡가에 대한 왜곡된 일면적인 인상이 상당히 해소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쇼스타코비치 [Shostakovich, Dmitrii Dmitrievich]

페테르부르크 출생. 여러서부터 페테르부르크음악원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에게 피아노의 기초를 배우고,

11세 때 글랴세르의 음악학교에 들어가 정규의 작곡공부를 시작하였다.

러시아혁명 후인 1919년에는 페트로그라드음악원에 입학,

L.니콜라이에프에게 피아노를,

M.시타인베르크와 A.K.글라주노프에게 작곡을 배우고 25년에 졸업하였다.

 

졸업작품인 제1교향곡은

소련뿐 아니라 세계 악단에 그의 이름을 떨치게 하였다.

당시 페테르부르크에는 유럽의 새로운 경향의 음악,

즉 I.F.스트라빈스키의 원시주의, A.베르크의 표현주의 작품들이

한창 연주되었으므로, 그도 그들의 작품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의 작품에 제2교향곡(27) 제3교향곡(29),

그리고 피아노·트럼펫과 오케스트라의 협주곡(33) 피아노전주곡집

N.V.고골리에 의한 오페라 코(30), 발레 황금시대(30) 등이 있다.

 

한편 이 무렵부터 예술에서 이른바 사회주의 리얼리즘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가 34년에 발표한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이

공산당의 예술운동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창작에 대한 이러한 간섭은 당연히 문제가 되었으나,

그는 이 비판을 견디어 내고 작풍을 전환하여 37년의 제5교향곡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40년 피아노5중주곡으로 제1회 스탈린상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페테르부르크에서 방공감시원으로 종군하였고,

1942년 제7교향곡으로 다시 스탈린상을 받았다.

 

그러나 대전 후인 1945년에 발표한 제9 교향곡은..

그 경묘한 내용과 신고전적 작풍 때문에

“타락한 유럽 부르주아지의 형식주의에의 추종”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즉 ‘지다노프 비판’이다.

그러나 49년의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와 51년의 합창모음곡 10의 시(詩)로

인기를 회복하고 또다시 스탈린상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여 1927년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였다.

 

1937∼1941년에는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1943∼1948년에는 모스크바음악원의 작곡교수를 지냈다.

작품에 15곡의 교향곡 외에 현악4중주곡을 비롯,

기악곡·오페라·오라토리오· 발레음악·영화음악 등 많은 걸작을 남겼다

 

[Bochum:scholle/05.02.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