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C, Saint-Saëns (1835 ~1921)

생상 피아노 협주곡 제1번

scholle 2016. 2. 26. 16:33

Piano Concerto No.1 in D major, Op.17

생상 피아노 협주곡 제1번

Saint-Saens, Charles Camille (1835~1921)

 

1악장 (Andante-Allegro assai)

2악장 (Andante sostenuto quasi adagio)

3악장 (Allegro con fuoco)

 

(Charles Camille Saint-Saens) 프랑스 음악을 부흥시킨 선구자로는

오페라의 구노와 기악의 생상을 들 수 있다.

생상은 1835년 10월 9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노르망디 지방의 농가 출신이고 어머니는 부유한 집안이었다.

 

부친을 일찍 여읜 생상은...

그림에 능한 모친과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고모 밑에서 자랐다.

음악에 대한 가르침은 고모에게서 받았는데

생상은 어려서 이미 피아노 연주에 비범한 재능을 보였고

뛰어난 기억력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천성이 쾌활하고 활동적이며 어려서부터 집념이 대단했다.

생상은 일곱살때,

정식으로 피아노와 화성을 배우기 시작했고 작곡도 시작했다.

 

1845년에는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베젬스와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대중 앞에서 연주 하였으며,

1846년에는 최초로 피아노 독주회를 가질 정도였다.

 

1848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이듬해에는 2등 1851년에는 1등을 차지하였고

그 후에는 작곡반에서 공부했는데,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리스트를 처음 만난 것도 이때였다.

1851년에는 로마 대상 콩쿨에 참가하였으나 입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성악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성세실리아 송가가 파리의 성세실리아 협회 주최의 콩쿨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그 해 12월에 초연되었다.

 

1853년에는 파리의 성마리아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임명되어,

1857년 1월에 마들렌 성당의 오르간 주자로 임명되기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교향곡 제1번은 성세실리아 협회의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1853년 보르도의 성세실리아 협회 주최의 음악 콩쿨에

교향곡 제2번으로 응모하여 1등을 차지하였으며,

이듬해 2월, 파리에서 연주되었다.

1861년에는 에델마이어 음악학교의 피아노과 교수로 임명되었는데,

이때가 생상이 그의 생애에서 교육에 헌신한 유일한 시기였으며,

제자 가운데에는 가브리엘 포레, 유젠느 지구, 앙드레 메사제 등이있다.

 

황색의 왕녀로 시작된 그의 초기 오페라는 성공치 못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조차

파리 극장 지배인으로부터 거절당해 1877년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고,

에티엔느 마르셀도 1879년 리옹에서 상연될 정도였다.

 

생상의 작품 목록은 170을 넘으며 각 장르에 걸쳐 놀랄만큼 풍부하다.

3개의 교향곡 중, 교향곡 제3번 c단조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포함한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된 것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삼손과 데릴라와 더불어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떨치게 했다.

 

그 소리의 화려한 화음은

곡의 처음에 제시되는 4개의 음으로 구성된 주제의 발전에 불과한데

그야말로 근대 음악에 있어 순수기악이 이룩한

대형 피라미드이며, 베토벤 속에 깃들여 있던 고전정신의 일면이

생상에 의해 응결되고 승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생상은 근대 예술의 기수 대열에 가담하여 수많은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1871년에는 프랑스 작곡가들에 대한 파리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감에

항의하여 로망뷔시느 등과 함께 국민음악협회를 창설하였는데,

목적은 프랑스 악파의 새로운 작품을 연주하는 데 있었다.

 

교향시 분야에서는 베를리오즈의 후계자로서

[옹팔르의 물레]

[파에통]

[주검의 무도]

[헤라클레스의 청년시대]등을 썼고,

베를리오즈가 미처 몰랐던 관현악법과 날카로운 기지를 정확한 필치로써 표현하였다.

실내악 분야에서도 그는 근대 프랑스의 선구자였는데

[피아노 5중주곡]

[피아노 3중주곡 제1번]

[;피아노 4중주곡]등이 유명하다.

 

형식 면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작품은 다섯 곡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제1번은 1865년 라이프치히에서 초연되었고,

제2번은 1868년 루빈슈타인 지휘로 파리에서,

제3번은 1869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제4번은 1875년 파리 콜론느 연주회에서,

제5번은 생상의 데뷔 5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각각 초연되었다.

 

그리고 이들 연주회에서 생상은 스스로 피아노 독주를 맡았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1873년 사라사테를 독주자로 하여 파리에서,

제2번은 1880년 파리에서 각각 초연되었는데

바이올린 협주곡 가운데서는 1880년에 씌어진 제3번이 가장 유명하며

1873년에 작곡된 첼로 협주곡과 더불어 오늘날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곡의 하나이다.

 

여기서 하나 덧붙일 것은 그의 작품 백조에 대해서이다.

생상의 이름은 몰라도 피아노 반주에 실려 첼로로 연주되는

그의 백조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실 이 곡은 그가 51세 때인 1886년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의 제13곡인데,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쿠르딤에서

사육제를 보내면서 작곡한 것이다.

 

생상이야말로 '예술을 위한 예술가'이며,

그의 생애 자체가 발랄한 '스케르초'였다.

그는 아프리카 여행 도중 알제리에서 86세로 생애를 마치기 몇달전,

파리에서 라모의 곡을 연주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요즘에야 트릴을 잘 치게 되었다"

그의 죽음에 임해 프랑스 국장의 예로써 그를 떠나 보냈다.

 

[Bochum:scholle/26.02.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