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sate-Chansons Russes Op.49
사라사테-러시아의 노래 Op.49
Ricci Ruggiero (violin) Graeme McNaught (piano)
19세기를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사라사테는
스페인의 팜플로나(Pamplona)에서 태어났다.
포병 군악대의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8세 때부터 마드리드에 나가서
마누엘 로드리게즈 사에즈(Manuel Rodríguez Saez)에게 사사했다.
10세 때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 앞에서 연주하여 절찬을 받고
명기 1713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받았다.
1856년, 후에 여왕이 되는 이사벨라 2세와 함께
장학금으로 파리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알라르(Jean Delphin Alard 1815~1888)에게 바이올린을 배웠으며
17살 때 음악원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최고상을 받았다.
음악원 졸업 후 1861년 런던에서의 첫 공연을 시작으로
유럽 각지와 남북아메리카 투어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1870년에 다시 파리로 돌아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펼쳐
파가니니 이후 가장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떨쳤다.
사라사테가 당대의 명인이었다는 사실은
당 대의 저명한 작곡가들이 그를 위하여 바이올린 작품을 작곡,
헌정하였고, 이 곡들이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랄로(Edouard Lalo 1823~1892)가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과 (스페인교향곡)을
브루흐(Max Bruch 1838~1920)가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과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그에게 헌정하였다.
사라사테 연주의 특색은 투명하고 부드러우며
감미로운 음색과 화려한 기교의 구사에 있었다고 한다.
폭넓은 비브라토와 개성적인 리듬의 매력을 잘 살린 연주를 하였고,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바이올리니스트의 작품 연주에 뛰어났다.
이는 그 자신이 바이올린역사의 계보에서
프랑코-벨기에 악파의 계보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기교를 가졌음에도 기교의 대명사인 파가니니 작품의 연주는 꺼려했다.
파가니니의 작품은 운지법에서 큰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손이 작은 사라사테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일한 기교적 작품이라도 파가니니와 사라사테가 작곡한
바이올린 곡을 비교해 보면,
파가니니의 작품은 유연성과 독립성, 손의 스트레칭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편곡한 오페라의 환상곡이나 소품을 자주 연주하였으며,
작곡가들이 그에게 헌정한 작품을 즐겨 연주하였다.
사라사테는 바이올린협주곡이나 소나타는 남기지 않았지만,
소품보다는 다서 규모가 큰,
이른바 그랜드피스(Grand piece)를 작곡했다.
대표적인 곡이
(찌고이네르바이젠)
(서주와 타란텔라)
(스페인무곡집)
(카르멘 환상곡)등 기교적이며 화려한 효과를 가진
스페인풍의 관능적인 작품을 작곡하였다.
[Bochum:scholle/26.12.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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