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나스 요제프 플레옐-교향곡 in C minor Op.66 B.154
Ignaz Josef Pleyel - Symphony in C major Op.66, B.154
Matthias Bamert (cond) London Mozart PlayersIgnaz Josef Pleyel (1757-1831)
그가 작곡했던 작품 대부분이 1787-1795년에 작곡되었다.
그런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널리 알려졌다.
프랑스 혁명으로 종교적·음악적 삶에 지장을 받게 되자
1791년 스트라스부르를 떠나 런던으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그의 연주회는 많은 청중들을 끌어들였으며
그의 작품들,특히 와 현악4중주들은 비평가들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특히 런던에서는 스승인 하이든의 뒤를 이어서 잘로몬 콘서트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1795년초 파리에 정착해서 메종플레옐(Maison Pleyel)음악출판사를 설립했다.
이 출판사가 운영되었던 39년 동안 루이지 보케리니,
베토벤,무치오 클레멘티,얀 라디슬라프 두세크,하이든의 작품들을 포함한 약 4,000여 곡이 출판되었다.
플레옐은 하이든의 현악 4중주와 교향곡을 시작으로 최초의 축소판 악보를 출판했다.
1813년 모든 사업에서 물러나려고 시도했지만 메종플레옐사(社)는 1834년 파리의 여러 음악 출판업자들에게 원판과 인쇄된 작품들을 팔고 완전히 출판을 중단할 때까지 유지되었다.
1807년 피아노 제조회사인 플레옐사(社)가 파리에서 설립되어 사업적으로는 계속 번창했다.
1815년 플레옐의 장남인 카미유(Camille Pleyel,1788~1855)가
회사의 합법적 동업자가 됨으로써 회사의 이름을 '이냐스플레옐에피스에네'로 했다.
유능한 경영자일 뿐만 아니라 감수성이 뛰어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았던 카미유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쇼팽은 플레옐 회관(Salle Pleyel:파리의 콘서트홀)에서
그의 파리 데뷔 연주회와 고별 연주회를 가졌다.
(후에 쇼팽은 1839년에 제작된 플레옐 그랜드 피아노를 소유했음).
1855년에 카미유가 죽자 그의 사위인 오귀스트 볼프(1821~87)가
뒤를 이었으며 회사의 이름도 플레옐 볼프사가 되었다.
볼프가 죽은 후에는 그의 사위인 귀스타브 리용(1857~1936)이
회사를 이끌었고 그는 다시 회사의 이름을 플레옐리용사로 바꾸었다.
이 회사는 19세기말 크로매틱 하프의 개발로 잘 알려져 있다.
작곡가로서 플레옐은 주로 기악곡을 열중했으며
교향곡,협주교향곡,협주곡,이중주와 7중주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남겼다.
그가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던 시기는 1783-1789년 까지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시기로
이때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도 작곡했다.
[음원출처'인기공]
[Bochum:scholle/30.12.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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