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카단테(Saverio Mercadante, 1795-1870, 작곡가)
이탈리아 알타무라(Altamura) 태생으로
나폴리의 싼 세바티아노(SanSebastiano) 대학에서 공부하고
처음엔 기악 작품을 작곡하는데 관심을 두고 3곡의 발레음악을 쓰는 등
본격적인 작곡 작업을 하던 가운데...
로시니를 만나오페라 작곡을 권유받고 본격적인 오페라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1819년에첫 오페라가 발표되었고,
3년 뒤,
일리사와 클라우디오, Elisa e Claudio 가라 스칼라에서 상연되어 성공했다.
이탈리아 오페라 상연을 위해 1827년부터
3년간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여행했고,
1833년부터 1840년까지 마드리드의 노바라 대성당의 합창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836년에 로시니의 초청을 받아 파리로 가서 <그리시를 위한 브리간티,
I Briganti for Grisi> <루비니> <탐부리니> <라브라쉐> 같은 오페라를 썼다.
1835년, 파리에 있는 동안 마이어베어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오페라가 보다 드라마틱한 방향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드라마와 음악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가져가고
보컬 라인을 보다 단순화 시키는 그의 경향이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이런 이유로 메르카단테를 이탈리아 정가극의 효시라고 평가하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1837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취급을 받는 곡들이 집중적으로 작곡되기 시작했다.
맹세, Il giuramento는 라 스칼라에서 상연됐고
이 작품의 성공으로 베르디, 파치니 등과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오라치와 쿠리아치, Orazi eCuriazi도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고
1840년엔 나폴리 음악원 원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60세가 되면서 시력에 이상이 왔고
68세가 되는 해에 완전하게 시력을 잃었다. 1870년에 세상을 떠났다.
메르카단테는 도니제티, 로시니, 벨리니로부터 베르디에게로
이탈리아 오페라의 스타일이 변화하는 중간시기에 해당되는 인물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개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잊혀졌다.
2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부터 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아울러 작품 발굴이 시작되어 서서히 리바이블되고는 있으나
여전히 도니제티나 벨리니에 비하면 그에 대한 인지도는 낮은 상태로 머물고 있다.
그 둘은 메르카단테의 생존 당시엔 오히려인지도가 떨어졌던 작곡가였다.
메르카단테는
미사, 칸타타, 송가, 오케스트라 작품,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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