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다울랜드(1563(?)~1626(?))는
영국의 르네상스였고 동시에 문화예술의 황금기를 구가했던
엘리자베스1세 여왕 시대를 대표하는 류트 가곡(Lute Songs)의 명연주자이자 작곡가다.
특히 21세기에 시대음악 붐이 형성되면서
새삼 다울랜드의 노래가 대중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전역에서 당시 류트 연주가로 이름을 떨쳤고,
류트가곡 작곡가로도 초기 예술가곡 발전에 힘써
영국 음악역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작곡가다.
다울랜드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주장에 따르면 런던,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 달키(Dalkey),
웨스트민스터 등 세 군데나 된다.
그만큼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정보가 빈약하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그의 교육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17세 때인 1580년에 주프랑스 영국대사 헨리 코밤 경(Sir Henry Cobham)을 따라
파리에 갔고, 파리에 있는 동안 가톨릭 신자가 됐다.
당시 영국은 개신교인 성공회가 국교였다.
1584년에 런던으로 돌아왔고,
1588년 옥스퍼드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류트음악에 관한 깊은 연구와
창작활동을 벌여 나갔다.
1594년에 영국 왕실에 류티스트 자리가 나서 응시했지만
실패했다. 자기가 성공회 신자가 아니고 로마가톨릭 신자여서
그 자리를 놓쳤다고 여긴 다울랜드는 법정에까지 이 문제를 들고 갔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탈리아 마드리갈이 영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속에서
성악과 류트의 대화를 발전시켜그만의 독특한 예술형식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곧 당시 영국음악을 대표하는 류트 송(lutesongs)이었다.
1597년 12곡의 노래를 담은 최초의 류트가곡집을 런던에서 출판하여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598년,
덴마크 왕 그리스티안 4세를 섬기는 류트주자가 되어 8년 동안 일했다.
그리스티안 왕은 음악을 아주 좋아했고
다울랜드에게 주는 연봉도 500 델러(daler)나 되어
당시 덴마크 궁정에 근무하고 있던 모든 시종들 가운데 최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울랜드는 1606년에 덴마크를 떠나
런던으로 돌아가 류트주자로서 활약했다,
1612년에 제임스1세 왕실 전속 류트주자로 고용됐다.
그리고 그 자리를 죽을 때까지 지켰다.
그의 사망일도 정확하지 않다.
그의 마지막 셀러리 지급일이 1626년 1월 20일이다.
그의 유해는 2월 20일에 런던에 있는
성 앤 블랙프라이어스(St. Ann Blackfriars)에 안장되었다.
류트 반주가 딸린 성악곡을 류트가곡
또는 에어(Ayre)라고 부르는데 다울랜드는
류트반주가 붙은4권의 가곡집을 출판했다.
1597년에 발표한 제1권은 5천여 권이 팔릴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이노래집은 류트 역사상 가장 값진 작품집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밖에 80여곡의 가곡을 통해
서 엘리자베스 왕조의 서정과 유머를 노래하고,
근세 가곡예술의 막을 열었다.
다울랜드가 남긴대부분의 작품은 류트를 위한 독주곡이거나 류트 반주를 곁들인 가곡들이다.
1612년에 출판된 다울랜드의 마지막 작품 <순례자의 위로 A Pilgrimes Solace>는
대위법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세기 영국 음악학자 에드먼드 펠로우즈(Edmund Fellowes)는
이 곡을 영국 류트가곡의 마지막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아름다운 선율, 열정적이고도 슬픈 노래, 대담한 화성법,
독립성이 높은 류트 반주는 시대를 초월하는 아름다움이 있고,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또한 당시 특히 유명했던 가곡 <흘러라 나의 눈물 Flow my teares>을
기악용으로 편곡한<눈물의 파반느 Lachrimae Pavan>를 비롯해서
<오라, 무거운 졸음이여 Come, heavy sleep>
<다시 돌아와 주오, 다정한 사랑
Come again, sweet love>
<지금 초대하오 doth now invite>
<여인을 위한 멋진 장신구
Fine Knacks for Ladies>
<내 여인이 우는 것을 난 보았다
I Saw My Lady Weepe>등이 유명하다.
훌륭한 시인이기도 했던 다울랜드는
가사가 지니고 있는 뉘앙스와 분위기를 노래에 적절하게 나타내려고 노력했다.
가사를 마치 그림 그리듯 보이는 음악으로 번역해 냈다.
그래서 그의 류트송은 가사가 잘 들린다.
[Bochum:scholle/24.05.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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