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quin Rodrigo (1901~1999)

"로드리고(Rodrigo) 아랑훼즈 협주곡"

scholle 2007. 9. 19. 00:44

Concierto de Aranjuez (아랑훼즈 협주곡) 호아퀸 로드리고(Joaquin Rodrigo 1901~1999) 지금 흘러나오는 이 음악은 호아퀸 로드리고가 1940년 38세의 나이에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하여 작곡한 Conciertto de Aranjuez for Guitar(아랑훼즈 협주곡)입니다. 이 아랑훼즈 협주곡은 당시 친구이자 당대 스페인 최고 기타리스트인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Regino sainz de la Maza.1897~1982) 를 위해 작곡한곡입니다.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는 스페인이 낳은 작곡가로 주로 훌라멩고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하는 음악가였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마드리드왕립 음악원에서 수학하면서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제자인 “다니엘 포르테아”(Daniel fortea)로 부터 사사를 받었으며 젊은 시절부터 스페인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던 기타리스트였습니다. 1940년 12월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의 기타독주로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은 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모두들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연시 발생하는 음량차이로 인해 처음에는 협연이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청중과 비평가로부터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아랑훼즈는 마드리드 남방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으로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습니다. 마하스(젊은 여인들)와 투우사 그리고 중 남미의 선율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이 협주곡은... 나포레옹 이전의 마지막 왕이 머물던 궁전의 생명속으로 혼을 불러들이고자 한 의도였을 것입니다. 아랑훼즈 협주곡이 지닌 최대 강점은 에스파냐라는 나라와 민족유산을 음악으로 멋지게 승화시켜 그려냈다는 점이고 또 에스파냐 민속 악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를 사용해 지중해 생활의 색깔. 분위기. 멜로디. 그리고 발랄함이 커다란 슬픔으로 돌변하는 역설을 용케 포착하였다는 것입니다. 로드리고는 이 협주곡을 쓰면서 “신과의 대화”라고 표현 했다고 합니다. 극적인 영감과 낭만적인 선율을 유려하게 수를 놓아 조화롭게 흐르게 다룬 것은 그의 내재해 있던 고통과 슬픔의 환란들을 고스란히 여기에 담아낸 인생 자체였기 때문일 것입이다. 마드리드 남쪽 타호(Tajo)강 주변에 있는 부르봉 왕가의 여름별장인 아랑훼즈 궁전
아랑훼즈 궁전은 합스 브르크(House of Habsburg)시대의 역사적 가치가 높은 스페인 왕궁의중요 유적지로 아름다운 정원과 주변경관이 뛰어난 관광지입니다. 그러나 이 궁전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것은 물론 궁전의 아름다움도 있겠지만 스페인이 자랑하는 시각 장애인인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 궁전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델 삼아 1554년 부터 1598년 까지 44년간 필립(Philip) 2세 시대에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Juan bautista de Toledo)와 후안 데 헤레라(Juan de Herrera)에 의해 건축되었습니다. 아랑훼즈 궁전은 2001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바 있읍니다. 호아킨 로드리고(Joaquin Rodrigo 1901~1999) 호아퀸 로드리고(Joaquin Rodrigo)
로드리고는 맹인 작곡가입니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이 풍부하여 양친은 저명한 음악가에게서 기초교육을 받게 하여 시력의 결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장애를 딛고 일어선 스페인의 대표적 작곡가입니다. 그는 1901년 11월 22일 스페인의 발렌시아주 북부에 위치한 사군토(Sagunto)에서 태어났습니다. 불과 3살(1904) 때 그는 악성 디프테리아로 인해 완전히 시력을 잃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시력회복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개안에 성공하지 못했고 일생을 어둠속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으로 보는 세계와는 차단되어 있는 상황에서도 음악에 깊은 관심과 정열을 쏟았습니다. 특히 기타에 대한 강한 애착은 앞을 보지 못하는 로드리고에 있어서 삶의 전부라고 할 만큼 생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입니다. 파리에서 음악공부를 하면서 피아노로 작곡과 연주를 했는데 이곳에서 부인인 터키의 피아니스트 “빅토리아 카미(Victoria Kamhi)”와 결혼을 했고 스승인 스페인의 저명한 작곡가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를 맞났습니다. 스페인 내란이 끝난 뒤 1939년 스페인에 정착해 음악 비평가로 활동하면서 국영 라디오를 위한 음악자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30년 동안 마드리드 대학교에서 “마누엘 데 파야” 음악 강좌를 맡아 후세 음악 교육에도 열정을 쏟았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시각적인 유한한 세상과 편협하고 제한된 세상을 초월하여 영감과 비약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다 높고 넓은 음악의 세계를 살다간 음악가였습니다. 평생 수많은 명예를 누리고 살은 로드리고였지만 1991년 국왕 “후앙 카를로스 1세”로부터 수여받은 ”아랑훼즈 정원의 후작”이라는 작위를 가장 자랑스러워했다고 합니다. 호아퀸 로드리고(Joaquin Rodrigo)와 빅토리아 카미(Vitoria Kamhi) 신혼시절에 아랑훼즈에 머물렀던 로드리고는 맹인이었던 탓에 궁궐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그 곳에서 받았던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가 스페인 내전을 피해 파리에 머무는 동안 아랑훼즈 궁궐을 회상하고 작곡한것으로 전해집니다. 수 없이 희생된 무고한 생명들의 넋을 위로하며 또한 유산으로 첫번째 아기를 잃었던 절망감을 표현한 곡이기도 한 이 협주곡은... 화려함이 금새 쓸쓸함으로 변해서 허공속으로 살아져가는 느낌을 주는데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스페인 왕실 궁궐의 영화도 생명의 덧 없음 앞에서는 색이 바래져 버린다는 것을 표현한것 같습니다. 이 부부는 천수를 다하며 살다가 1997년 7월 21일 아내 "빅토리아 카미"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로드리고"는 2년후 1999년 7월 6일 그 뒤를 따랐다 하는데 두사람은 아랑훼즈 묘지에 함께 묻혀 있다고 합니다. Kary karr(케리 카 1941~)콘트라베이스(Contrabass) 연주 케리 카가 콘트라베이스로 연주하는
"아랑훼즈의 협주곡"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인 케리 카(Kary Karr)는
태평양 전쟁 발발하기전인 1941년 1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1918년 혁명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러시아계 유태인이다. 7대에 걸쳐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영재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조부 친구인 "디멘 스타인"의 지도를 받다가 "헤르만 라인하겐"밑에서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그후 남 캘리포니아대학과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수학하였고 "레너드 번스타인"의 인정을 받으면서
1962년 뉴욕에서 데뷔 이때부터 어느 오케스트라에도 소속하지 않고 독주활동에 전념. 콘트라베이스를 대형 첼로처럼 쉽게 다루며 이 악기가 독주악기로서 인정받는데 큰 역할을 한 음악가이다. [Bochum:scholle/19.09.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