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p Concerto in Bb major, Op.4 No.6
헨델 / 하프 협주곡 Op.4 No.6
Georg Friedrich Händel (1685-1759) Lily Laskine, Harp
Orch de l'Association des Concerts Lamoureux
전곡 연속듣기
Lily Laskine, Harp
1악장 (Andante Allegro)
Lily Laskine, Harp
Orchestre de l'Association des Concerts Lamoureux
2악장 (Larghetto)
Lily Laskine, Harp
Orchestre de l'Association des Concerts Lamoureux
3악장 (Allegro moderato)
Lily Laskine, Harp
Orchestre de l'Association des Concerts Lamoureux
1악장 (Andante Allegro)
Julian Bream, Guitar
이 곡은 헨델의 협주곡 중에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 중의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유려함이 돋보이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헨델은 원래 이 곡을 당시에 상당히 이름을 날리던
하프 연주자 파엘을 위해 작곡을 하였고,
그것을 류트 또는 하프를 위한 협주곡으로
하기로 했었는데, 결국은 현재처럼
하프 또는 오르간을 위한 협주곡으로 했던 것이다.
헨델은 이작품을
나중에 오르간을 위한 협주곡으로 개작 출판하기도 했다.
시냇물 졸졸 흐르는 계곡이나 나뭇잎이 바람에
산들거리는 산뜻한 풍경을 연상시키는 이 곡은
TV 방송 프로그램 안내를 내보낼 때,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이 음악이
곧잘 쓰여지곤 했기 때문에 우리들 귀에도 매우 익은 곡이다.
게오르그 프리드릭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은
1685년 2월 23일
중부 독일의 할레(Halle)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귀족 바이센펠스(Saxe Weissenfels) 공작의
이발사겸 외과의사였고,
어머니는 목사의 딸로서 신앙이 두터운 분이었다.
바흐와 달리
헨델의 집안에는 대대로 음악가가 나지는 않았으나,
헨델은 소년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났다.
7세가 되던 해에
바이센펠스 궁정에서 오르간을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 때 그의 음악을 들은 바이센펠스 공작은 크게 감동을 받고
헨델의 아버지에게 음악공부를 시키라고 권유하였다.
헨델의 아버지는 원래 헨델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나 성모 마리아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이며
작곡가인 차하우(F. W. Zachau)에게 보내어 음악공부를 시켰다.
이후 헨델은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의
뛰어난 연주자가 되었으며 바이올린과 오보에 등
여러 악기를 배우고, 화성학과 대위법의 기초를 쌓는가 하면,
당시의 통상적인 학습 방법대로 유명한 작곡가들의 악보를
사보하면서 공부하였다.
확실치는 않으나, 헨델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1702년에 할레대학에 입학해서 일년 남짓 법학을 공부하였다.
이 기간 중에도 헨델은 칼뱅파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음악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1703년, 헨델은 오페라 작곡가의 꿈을 가지고
할레대학을 떠나 단시 오페라의 중심지인 함부르크(Hamburg)로 갔다.
이 곳에서 처음에는 오페라 극장의 바이올린 주자로 일하다가
후에는 오르가니스트로 일하게 된다.
이 즈음에 헨델이 사귀었던 음악가들은
마테존(Johann Mattheson)과
당시 함부르크 오페라 극장 감독이었던 카이저(Reinhard Keiser)였는데
이들은 음악 동료로서 헨델의 작품 활동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함부르크에 있으면서 헨델은 [알미라(Almira)와 [네로(Nero)]
한 편의 오페라를 둘로 나눈 작품
[행복한 플로린도(Der beglückte Florindo)와
[변신한 다프네(Die verwandelte Daphne)>를 작곡하였는데,
이 중 [알미라]만이 성공을 거두었다.
오페라 이외에도 건반악기 작품을 포함한
많은 기악곡이 이 기간에 작곡되었다.
1706년 헨델은 함부르크에서 알게 된 이탈리아 메디치가
(Medici家)의 페르디난도(Ferdinando) 왕자의 초청으로
이탈리아의 피렌체로 갔다.
이탈리아에 3년간 체류하면서
베네치아, 나폴리 등 여러 도시를 방문하고
많은 귀족들과 유명한 작곡가들을 만났으며,
로마에서는 그가 체류하던 루스폴리(Francesco Ruspoli)공작을 위하여
약 150여 곡의 세속 칸타타를 작곡하였다.
1708년에는 오라토리오 [부활(La resurrezione)]가
코렐리의 오케스트라 반주로 루스폴리의 궁정에서 공연되었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3개의 대규모 라틴 모테트와
2편의 오라토리오 [아치스(Acis)]
[갈라테아와 폴리페모(Galatea and Polifemo)]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를 작곡했는데
특히 [아그리피나]는 27번이나 공연될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출처;반디불이 사랑]
[Bochum:scholle/20.09.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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