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ar A, Franck (1822 ~1890)

프랑크 / 피아노 5중주 (Piano Quintet in F minor, Op.14)

scholle 2015. 10. 8. 15:49

 

프랑크 / 피아노 5중주(Piano Quintet in F minor, Op.14)

피아노 5중주곡 바 단조는 현악4중주곡보다

약 10년전인 1879년에 완성된 작품인데,

그의 교향곡 라 단조의 경우처럼

전곡을 통일시키는 '순환주제'를 사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하나의 주제가 전곡을 꿰뚫고 있는 순환주제는

프랑크 고유의 형식인데,

이것은 바그너의 '지도동기', 베를리오즈의 '고정악상'과 같은 기능을 한다.

이것은 음악의 논리성(論理性)을 중요하게 취급 하겠다는

작곡가의 의지인 셈인데,

그렇다고해서 순전히 논리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매우 깊은 명상의 소산(所産)이라고 느껴질만큼 고즈녁한 명상이 그득하다.

 

1악장-Molto moderato quasi lento-Allegro

2악장-Lento con molto sentimento

3악장-Allegro non troppo man con fuoco

 

제1악장의 서주부에서 연주되는 주제를 기억해 두는 것이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가 된다.

그것이 순환주제이기 때문이다.

제1악장 / 느린 lento의 서주부와 빠른 allegro의 주부(主部)로 구성된 소나타 악곡.

 

제2악장 / 짙은 감상(感傷)이 베어있는 느릿한 lento악장.

 

제3악장 / 조성(調性)이 일정치 않아서 현대음악의 발아(發芽)를

발견 하게되는 악장이다.

베토벤의 작품들이 어쩌다 음악원에서나 연주될뿐

다중(多衆)이 모이는 공연장에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다시 말해서 일부 음악 전문가들을 위한 연주회에서나

어쩌다 베토벤의 작품이 연주되는 상황인 셈이다.

그의 작품이 오히려 식상할만큼 너무도 흔하게 연주되는

오늘의 형편에서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세자르 프랑크(C sar August Franck, 1822∼1890)가 활동하던

프랑스의 음악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형식미를 중요시 하는 고전파의 작품은 거의 연주되는 일이 없었고,

롯시니·마이어베어·오베르 같은 오페라 작곡가들의 극음악들이

갈채를 받는 상황 이었다.

 

특히, 빠리에서는 고전주의는 망각되고 있었고,

극적 재미와 향락적 취미로 포장된 음악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바하의 음악을 연구하고,

고전주의 형식미학을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프랑크는

아무래도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 뻔하다.

 

실제로, 프랑크는 프랑스의 음악계와는 별 상관 없는 인물로

치부되기에 이르렀고,

그가 발표하는 작품들은 평론가와 청중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프랑크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일체 개의치 않고

오직 자신의 세계로 몰입했다.

프랑크가 그의 생애를 통해서 처음으로 청중의 박수를 받고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은 것은 1890년의 일이었다.

 

프랑스 국민음악협회 주최로 열린 음악회에서

그의 현악4중주곡이 초연됐을 때,

청중들은 기립 박수로 그에게 환호를 보냈고

평론가들은 처음으로 찬사의 표현을 썼던 것이다.

70세가 거의 다 되어서야 세상의 인정을 받은 셈인데

, "이제서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기 시작 했구먼 "이라고

그 자신도 흐뭇하게 생각 했었다고 한다.

[글: 곽근수]

세자르 프랑크 (Cesar Franck, 1822-1890)

 

화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운 프랑크는

12세의 나이로 리에주 음악원을 졸업하고

연주여행을 다녔을 정도로 조숙한 천재였다.

 

15세 되던 해엔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푸가, 대위법, 작곡, 오르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오르간 연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이던 그는

여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를 전전하다가 1858년에 성 클로틸드 교회의

합창장이 된 그는 이어 그 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이 즈음 그의 오르간 연주를 들은 리스트는

프랑크를 두고 "바흐 이후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며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용하고 따뜻한 성품을 지닌 프랑크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명망과 존경을 받았다.

 

1872년엔 파리 음악원의 오르간 교수가 되어

루이 비에른, 가브리엘 피에르네, 에르네스트 쇼송, 앙리 뒤파르,

뱅상 댕디 등을 가르쳤으며..

프랑스 국민음악협회의 일원으로 프랑스 작곡가들을 지도했다.

 

그의 작품들은..

베토벤과 바그너풍의 풍부한 화음들로 가득차 있다.

그 중에서도 (교향곡 D단조) 피아노곡 전주곡, (코랄과 푸가) 교향시

(저주받은 사냥꾼)(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등이 대표적이다.

 

[Bochum:scholle/08.10.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