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arlatti Domenico(1685~1757)

도메니코 스카를라티-키보드(피아노) 소나타 K.8

scholle 2015. 12. 9. 06:29

감성 / 박경리 다 그렇게 살다 갔을거야 응어리 삼키는 강가 구름 한 점 내마음 한 점 한 점 점만큼 줄어든 영혼 펴 보면 갈청 같이 엷을거야 찢어지겠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키보드(피아노) 소나타 K.8 (L.488)(전원) G minor (Allegro) Scarlatti Domenico-(Keyboard)Piano Sonata K.8 (L.488)(Bucolic) G minor (Allegro) Ivo Pogorelic (Piano) 나폴리에서 태어나.. 당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본좌 작곡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음악을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교사들이었던 가에타노 그레코,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 베르나르도 파스키니 등에게 하프시코드 연주법과 작곡, 이론, 화성법, 대위법을 배운 뒤 1701년에 나폴리 궁정 예배당 전속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다. 1704년에 아버지 알레산드로는 아들을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의 베네치아로 보내 음악적인 경험을 더 쌓도록 했는데, 이 시기 동안 초기 건반 소나타를 비롯한 작품을 작곡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활동 양상이나 일화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이후 1709년에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폴란드 망명 왕실의 여왕 마리 카시미르의 전속 쳄발리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고, 이 시기 동안 하프시코드 명연주자로 명성을 떨치면서 심지어 독일 출신의 동년배 라이벌 조지 프레드릭 헨델과 현피연주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이 연주 대결은 그냥 높으신 분들의 여흥을 위한 것이었고, 이후에도 두 거장은 서로의 음악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남았다. 로마 부임기에는 건반 소나타 외에도 여왕이 운영하던 사설 극장을 위해 여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1715년부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가대장을 역임했다. 이 시기에 영국 런던에서 자작 오페라를 상연하는 등 명망있는 작곡가로 입지를 굳혔고, 1719년 포르투갈 왕실에서 초빙 제의를 받고 성가대장을 사임한 뒤 리스본에서 당시 포르투갈 공주였던 마리아 막달레나 바르바라의 전속 음악교사 겸 쳄발리스트로 활동했다.
(1685년 ~1757) 1727~28년에는 잠시 로마로 돌아가 일하면서 첫 아내 마리아 카테리나 젠틸리와 결혼했고, 1729년에 다시 스페인의 세비야로 가 4년 동안 부임하면서 그 지방의 민속 춤곡인 플라멩코를 비롯한 스페인 전통 음악의 강한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1733년에는 이전 고용주였고 1729년 스페인 왕세자와 결혼해 스페인 왕가의 일원이 된 바르바라 공주의 부름을 받고 왕실 전속 쳄발리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고, 이후 평생동안 직책을 유임하면서 수백편의 건반 소나타 작품들을 창작했다. 1742년에 첫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스페인 여성인 아나스타시아 마하르티 히메네스와 재혼해 여생을 보냈고, 당대 본좌 카스트라토였던 파리넬리와 친교를 맺고 그를 위해 성악 작품들을 써주기도 했다.
1757년에
마드리드에서 향년 71세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산 노르베르토 수도원 묘지에 안장되었다.
[Bochum:scholle/08.12.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