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 박경리
다 그렇게 살다 갔을거야
응어리 삼키는 강가
구름 한 점
내마음 한 점
한 점
점만큼 줄어든 영혼
펴 보면
갈청 같이 엷을거야
찢어지겠지
도메니코 스카를라티-키보드(피아노) 소나타 K.8
(L.488)(전원) G minor (Allegro)
Scarlatti Domenico-(Keyboard)Piano Sonata K.8
(L.488)(Bucolic) G minor (Allegro)
Ivo Pogorelic (Piano)
나폴리에서 태어나..
당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본좌 작곡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음악을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교사들이었던 가에타노 그레코,
프란체스코 가스파리니, 베르나르도 파스키니 등에게
하프시코드 연주법과 작곡, 이론, 화성법, 대위법을 배운 뒤
1701년에 나폴리 궁정 예배당 전속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다.
1704년에 아버지 알레산드로는 아들을 이탈리아 반도 북동부의
베네치아로 보내 음악적인 경험을 더 쌓도록 했는데,
이 시기 동안 초기 건반 소나타를 비롯한 작품을 작곡하기는 했지만
정확한 활동 양상이나 일화는 잘 알려지고 있지 않다.
이후 1709년에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폴란드 망명 왕실의
여왕 마리 카시미르의 전속 쳄발리스트 겸 작곡가로 부임했고,
이 시기 동안 하프시코드 명연주자로 명성을 떨치면서
심지어 독일 출신의 동년배 라이벌 조지 프레드릭 헨델과
현피연주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이 연주 대결은 그냥 높으신 분들의 여흥을 위한 것이었고,
이후에도 두 거장은 서로의 음악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남았다.
로마 부임기에는 건반 소나타 외에도
여왕이 운영하던 사설 극장을 위해 여러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고,
1715년부터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가대장을 역임했다.
이 시기에 영국 런던에서 자작 오페라를 상연하는 등
명망있는 작곡가로 입지를 굳혔고,
1719년 포르투갈 왕실에서 초빙 제의를 받고 성가대장을 사임한 뒤
리스본에서 당시 포르투갈 공주였던 마리아 막달레나 바르바라의
전속 음악교사 겸 쳄발리스트로 활동했다.
[Bochum:scholle/08.12.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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