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 Wagenaar-Overture "The Taming of the Shrew"Op.25
요한 바헤나르-서곡 "말괄량이 길들이기" Op.25
안토니 헤르무스(지휘) 남서독일 필하모니
Antony Hermus (Cond) Nordwestdeutsche Philharmonie Johan Wagenaar
(1 November 1862 ~17 June 1941)
독일 작곡.오르간 연주자
요한 바게나르는 네덜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였다.
키프러스인인 헹스트(Gerard Berger van Hengst, 1828~ 1903)와
요한나 바게나르(Johanna Wagenaar, 1880~ 1944)의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바게나르의 아버지는 귀족 계급 출신이었으나,
그의 어머니는 비천한 계급출신의 하녀로
사회적인 신분과 계급의 차이가 컸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부모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바게나르는 어머니의 이름을 자신의 성(姓)으로 물려받았다.
바게나르는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결코 결혼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바게나르를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바게나르는 어린시절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나,
그의 나이 13세 까지는 정규적인 교육을 시작할 수 없었으며,
이후 피아노와 오르간, 바이올린, 음악이론, 작곡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바게나르는 작곡가이던 리하르트 홀(Richard Hol, 1825~ 1904)과
오가니스트였던사무엘 드 랑에(Samuel de Lange Jr. 1840 ~1911)의
감독아래 배웠으며,
1892년에는 베를린에서 브람스 친구이자
브람스의 음악적 추종자였던 헤르조겐베르크(Heinrich von Herzogenberg, 1843~1900)에게
특별히 대위법 등에 대하여 배웠다.
1888년 스승이던 리하르트 홀의 뒤를 이어
위트레흐트 대성당(Utrecht Cathedral)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며,
오르간 연주의 재능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위트레흐트 대성당에서 1896년부터 음악학교 선생으로도 일하게 되었으며,
1904년부터는 이 음악학교의 음악 지휘자를 맡기도했다.
그는 또한 위트레흐트 대성당 악단(Utrecht Municipal Orchestra)의
지휘자에도 지명되었다.
1919년으로부터 1937년까지 바게나르는
헤이그의 Royal Conservatory의 지휘자가 되었으며,
페터 판 안루이(Peter van Anrooy, 1879 ~1954),
에밀리에 엔소펜(Emile Enthoven, 1903 ~1950),
앙리 고도베르(Henri van Goudoever, 1898 ~1977),
알렉산더 부몰렌(Alexander Voormolen, 1895 ~1980),
레온 오델(Leon Orthel, 1905 ~1985),
윌렘 페아페르(Willem Pijper, 1894 ~1947) 등을제자로 두었으며,
1897년 발켄부르크 (Dina Petronella van Valkenburg, 1869~ 1941)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다.
바게나르는 오페라 몇 편을 비롯해 칸타타, 오르간 작품들,
관현악 작품 등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들은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베를리오즈의 음악에 영향을 반영하고 있으나,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음악적 영향은 절대적으로 큰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말년에 위트레흐트 대학(Utrecht University)으로부터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았다.
[Bochum:scholle/22.0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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