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C, Saint-Saëns (1835 ~1921)

생상스 / 피아노협주곡 4번

scholle 2009. 8. 24. 05:07
Piano Concerto No.4 in C minor, Op.44 생상스 / 피아노협주곡 4번 Saint-Saens, Charles Camille (1835 ~1921) 1악장 (Allegro Moderato - Andante) Alfred Cortot, Piano Charles Munch, Cond, 1939 녹음 2악장 (Allegro Vivace - Andante - Allegro) Alfred Cortot, Piano Charles Munch, Cond, 1939 녹음 40살 때인 1875년의 작품으로서 피아노를 다루는 법이 더 세련되고 내용도 깊이를 지닌다. 제 5 번과 함께 인기있는 작품이다. 악장은 둘밖에 없으나
각 악장이 각기 두 부분으로되어 있어서 실질적으로 4악장인 셈이다. 전체를 악상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생상은 순환 주제법을 쓰고있다.
이 순환 형식은 당시 프랑스에서도 프랑크나 댕디들에게서 사용되고 그 밖의 나라에서도 드보르작이나 차이코프스키 등의 곡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알프레드 코르토 (Cortot, Alfred Denis, 1877.9.26~1962.6.15) 알프레드 코르토는 프랑스인을 양친으로 하여 스위스 니용(Nyon)에서 태어났다. 파리 음악원에서 공부했고, 선생은 리스트의 제자였던 루이 디에메(Louis Diémer)였다. 1897년 피아노 연주자로서 데뷔하였다. 1902년에는 바그너의 오페라 [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의 최초의 프랑스 상연을 파리에서 지휘, 지휘자로서도 활약하였다. 19세기 말, 프랑스의 엘리트들을 휩쓴 바그너 열풍은 코르토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1901년 바이로이트로 가서 한스 리히터(Hans Richter)의 보조 지휘자가 되어 지휘를 배웠고, 귀국 후 파리에서 '신들의 황혼'의 프랑스 초연을 지휘했다. 그는 후에 베토벤 '장엄 미사'와 브람스 '독일 레퀴엠'의 프랑스 초연도 지휘했다. 카잘스는 코르토가 가장 아끼는 것은 르노와르가 그린 바그너의 초상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 후 파리음악원에서 피아노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19년에는 ‘에콜 노르말 드 뮈지크’를 설립하여 이 학교의 교장으로도 있었다. 연주 방면에서는 1905년에 첼로의 P.카살스, 바이올린의 J.티보와 함께 ‘카살스 3중주단’을 결성하여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였다. 카잘스는 그를 자신의 일에 대해 고도로 치밀하고 무엇보다도 야망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말했는데, 티보처럼 연습하기 싫어하는사람에게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웠으리라.. 카잘스는 그 말 뒤에 아마 이 야망 때문에 후에 그가 처한 슬픈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불행히도 코르토는 나치가 1940년 파리를 점령했을 때 공개적으로 협력했고 물론 나치 점령 지역과 독일에서 연주했다. 이 때문에 1944년 자유 프랑스가 회복되자 프랑스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스위스 로잔(Lausanne)으로 이주했고, 여기를 중심으로 다시 활동했으나 이미 전성기는 지나 있었다. 그래도 유럽 및 일본 등지로 연주 여행했고, 관계를 회복한 카잘스의 요청으로 1958년 프라드 음악제에서 카잘스와 듀오로 연주했으며, 1950년대부터는 다시 프랑스에서도 간헐적으로 연주했고 녹음도 했다. 프랑스에서 다시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카잘스의 회상처럼 그가 자신의 과거를 부끄러워하고 공개적으로 이 전력에 대해 사과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는 20세기 전반의 가장 뛰어난 피아노 연주자의 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또 슈만, 쇼팽, 드뷔시의 작품 해석에는 정평이 나 있고 슈만과 쇼팽의 작품을 편집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 밖에도 [현대 프랑스음악]등의 저서가 있으며 파리교향악단 창립 때(28)에는 상임지휘자로서도 활약하였다. 1950년경에 스위스의 로잔으로 은퇴하였으며, 그는 1962년 로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Bochum:scholle/24.08.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