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세상]

고정희 / 하늘에 쓰네

scholle 2013. 7. 20. 05:09

고정희(高靜熙) 詩 / 하늘에 쓰네 (1948~1991)

 

하늘에 쓰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하늘에 쓰네

내 먼저 그대를 사랑함은
더 나중의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내 나중까지 그대를 사랑함은
그대보다 더 먼저 즐거움의 싹을 땃기 때문이리니

가슴속 천봉에 눈물 젖는 사람이여
끝남이 없으니 시작도 없는 곳
시작이 없으니 멈춤 또한 없는 곳

수련꽃만 희게 희게 흔들리는 연못가에
오늘은 봉래산 학수레 날아와

하늘 난간에 적상포 걸어놓고
달나라 광한전 죽지사 열두 대의 비파에 실으니
천산의 매화향이 이와 같으랴

수묵색 그리움 만리를 적시도다
만리에 서린 사랑 오악을 감싸도다

그대 보지 않아도
나 그대 곁에 있다고 동트는 하늘에 쓰네

그대 오지 않아도
나 그대 속에 산다고 해지는 하늘에 쓰네

 

고정희 시인

출생-사망 1948년 (전라남도 해남)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도중 실족사)
학력
한신대학교 데뷔 1975년 시인 박남수 추천,
현대문학에 작품 발표 수상
1983년 대한민국 문학상

경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1984년 기독교신문사, 크리스챤 아카데미 출판간사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 고정희

길을 가다가 불현듯 가슴에 잉잉하게 차오르는 사람
네가 그리우면 나는 울었다

너를 향한 기다림이 불이 되는 날
나는 다시 바람으로 떠 올라 그불 다 사그라질때까지
스스로 잠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떠오르는법을 익혔다

네가 태양으로 떠 오르는 아침이면
나는 원목으로 언덕위에 쓰러져 따스한 햇빛을 덮고 누웠고

누군가 너에게로 가까히 가기위하여
빗장 밖으로 사다리를 내렸다

달빛 아래서나 가로수밑에서
불쑥 불쑥 다가왔다가 이내 허공중에 흩어지는 너
네가 그리우면 나는 또 울것이다.

Schubert - Nacht und Traume D.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