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Tchaikovsky (1840∼1893)

차이코프스키 / 교향곡 3번 '폴란드 풍의' Pyotr Il'ich

scholle 2013. 9. 18. 16:39

 

Symphony No.3 in D major, Op.29 'Polish'

Tchaikovskii (1840∼1893)

 

차이코프스키가 2번 교향곡의 작곡을 마친 후

슈만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낭만주의와

민족주의의 절충을 표현한 작품이 바로 이 3번입니다.

 

부제 “Polish”는

마지막의 5악장이 폴란드의 민속 무곡에서 인용한 것이라 붙여진 것인데

특히 이 3번은 4악장의 틀을 깨고 있는데다가

전악장에 걸쳐 단조와 장조의 유기적 결합이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완성의 7번을 제외하고는 유일한 “장조”의 작품이라는 것도

특이하고 “백조의 호수”에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점에서

차이코프스키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만드는 작품입니다.

 

1악장 (Moderato assai-Allegro brillante)

2악장 (Alla tedesca(Allegro moderato e semplice)

3악장 (Andante elegiaco)

4악장 (Scherzo(Allegro vivo)

5악장 (Finale(Moderato con fuoco-Tempo di polacca)

 

차이코프스키는 이른바 '센티'의 대가이다.

그의 음악은 '센티멘탈리즘'으로 특징 지어지며 사람들은 그를

'고독과 우수의 작곡가'라 부른다.

그는 결코 밝은 성격이 아니었으며, 자신의 성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유전적 특징을 타고난 동성연애자였다.

 

그는 그 사실을 평생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했고

아마 그런 의도에서 1877년 37의 나이에 자신을 사모하던

제자 안토니나 밀리우코바와 결혼했다

 

당연히 그의 결혼은 불행이었고

결혼 2주만에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해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었으나 미수에 그쳤다.

아내에 대한 동정심과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혐오감, 그리고 삶에 대한 절망이...

 

그를 심한 신경 쇠약이 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아내를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갔으며

아내를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이런 그를 격려하고 후원해준 나데츠타 폰 메크 부인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다.

11명의 자녀를 둔 46세의 미망인 폰 베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사랑하여 그를 후원해 주고

그가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폰 메크 부인은 그를 한번도 만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그를 후원했다.

어쨌든 폰 메크 부인의 후원을 받는 동안

차이코프스키는 명작들을 쏟아냈다.

교향곡 4,5,6번도 그녀의 후원 아래서 만들어진

러시아 교향악의 걸작들 중 일부이다.

 

[Bochum:scholle/18.09.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