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스트라우스 / 첼로를 위한 로망스
Richard Georg Strauss / Romance for Cello
Mischa Maisky, violoncello Semyon Bychkov, cond Orchestre de Paris
Strauss: Romanze for cello - Leonardo Sesenna
Richard Strauss(1864~1949)
Strauss with his wife and son, 1910.
리하르트 스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바그너 이후 독일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독일 후기 낭만파의 마지막을 대표하는 대작곡가로 손꼽힌다.
그의 1896년작 교향시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삽입곡으로 유명하다.
젊어서는 리스트의 영향을 받아,
교향시 (돈 후안) (알프스 교향곡)을 쓰고,
그 후 바그너의 영향으로 오페라 (살로메)(장미의 기사)등을 완성하였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빈의 대중적인 왈츠 작곡가였던 요한 스트라우스(Johann Strauß) 1세나
그 자손들과는 연관이 없으며,
까리용 제작자 리하르트 스트라우스는 동명이인이다".
1882년~83년 뮌헨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고 쇼펜하우어에 심취하였다.
또 그 사이 자기의 작품을 가지고
빈 ·베를린 등지로 연주여행을 하면서 뷰로와 사귀는 등
그의 재능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84년 (교향곡)(작품번호 12)이 뉴욕필하모니에서 초연되고,
같은해, 뷰로의 뒤를 이어 마이닌겐 관현악단의 악장에 취임,
지휘자로서도 활동하게 되었다.
브람스에게 재능을 인정받은것도 이 무렵이다.
스트라우스(Strauss)는 철저한 반(反)바그너주의자였던
아버지의 감화로 바그너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 후 점차 리스트와 바그너에 심취, 열렬한 바그너 신봉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오페라에서는 바그너보다 감미로우면서도 관능적인 선율로
교향시에서는 리스트보다 자유로우면서도 광범한 내용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발전시켜 나갔다.
87년에는 소프라노 가수이자 자신의 가곡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가 된 파울리네와 결혼하였다.
그후, 뮌헨,바이마르,베를린,빈 등지의
각 오페라극장 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또 베를린 필하모니와 빈 필하모니의 지휘도 맡고,
잘츠부르크음악제를 비롯한 유명한 음악제에서도 지휘를 맡았다.
[Bochum:scholle/03.07.2011]
'Richard Strauss (1864~1949) ' 카테고리의 다른 글
R,슈트라우스 / 오페라 '그림자없는 여인' 중 '교향적 환상곡' (0) | 2014.01.18 |
---|---|
Morgen (내일) Op.27 No.4 (0) | 2013.11.27 |
리하르트(Richard Strauss) 알프스교향곡 (0) | 2013.11.17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 Allerseelen (All Souls' Day) 위령의 날 (0) | 2013.06.06 |
리하르트 스트라우스 /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0) | 2011.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