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노트 /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 잎 두 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 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Bochum:scholle/16.09.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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