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o Fur Violoncello, Viola, Kontrabass
롬베르그 / 트리오 "첼로, 비올라, 더블 베이스"
Bernhard Heinrich Romberg (1767~1841)
Hirofumi Fukai, Viola Klaus Stoppel, Violoncello Gerhard Dzwiza, Kontrabass
1악장, Allegro Non Troppo
2악장, Andante
3악장, Rondo Allegretto
그 당시 롬베르그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은 베토벤이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기 위해 롬베르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롬베르그 왈...
"베토벤에게 그런일로 수고를 끼쳐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자신의 작품밖에는 연주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후에 트리플 콘첼토에서 첼로파트에
무거운 짐을지운 베토벤..
Bernhard Heinrich Romberg (1767~1841)
북독일 오르덴부르크 지방의 프레켄딩크라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바순과 첼로연주자였다.
7세에 공개연주를 연후 첼로에 매진하여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연주여행을 다녔으며 이때 밧쥐남작의 주선으로
'콩세르 스피리튀엘'에 출연하게되었다.
프랑스에서 돌아온후 퀼른지방 뮌스터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경험을 쌓고
리스나 라이혀와 같은 재능있는 음악가들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1792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자 오케스트라도 해산이 되었다.
롬베르그는 함부르크로 떠나게되어
그곳에서 오페라극장과 계약을 맺고 이탈리아와 빈으로
연주여행을 다니며 성공을 거두었다.
빈에서 머무르는동안 베토벤,하이든과도 알게되고
하이든은 이 재능있는 음악가를 당시 영향력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었다.
함부르크에서 정열적인 활동을 한후
포르투칼,스페인 런던으로 연주여행을 하였고
파리 콩세르바트와르의 교수지위를 얻게된다.
1805년에는 베를린 궁정악단의 수석 첼리스트 지위도 얻게되었다.
그러나 1806년 예나 대전은 빈에 정착할 그의 계획을 무산시켰고
다시금 연주 여행의 길을 나서게 하였다.
러시아에서의 성공적인 연주로 그곳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모스크바에서 2년간 머무르기도 하였다.
당시의 전쟁들은 롬베르그 외에 많은 음악가나 예술가들에게
불안정한 상황을 제공하였지만 그 속에서도 꾸준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전쟁의 승리후 그는 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813년 베토벤교향곡 7번과 '웰링턴의 승리(전쟁교향곡)의 초연에
시포어,마이제다,살리에리,마이어베어.모셀레스,후멜 등의
이름있는 사람들과 참여하게 되었다.
롬베르그는 1816년 베를린 궁정악장의 지위를 얻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게도 주위에서도 그에게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또 1820년 53세에 함부르크에서 피아노공장을 세웠는데
이것도 재정난으로 실패하게되었다.
이후 연주여행을 다시 시작하고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파가니니 지휘로 연주하였다
취리히를 거쳐 다시 빈으로 돌아온 그는
베토벤과 재회를하고 연주생활을 이어갔다.
이때부터 그의 연주에 대한 비판들이 나왔는데 그는 어떠한 비판에도 굴하지 않고
연주와 작곡에 열성을 보였다.
73세에 파리에서의 연주는 그에게 실패와 건강에도 부담을 주었다.
1841년 8월13일 74세의 나이로 고향인 함부르크에서
명예시민권을 얻었으며 생을 마감했다.
[Bochum:scholle/20.05.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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