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Field (1782~1837)

존 필드-피아노 협주곡 No. 1 in E flat major H. 27(1799)

scholle 2016. 9. 25. 15:31

 

John Field-Piano Concerto No. 1 in E flat major H. 27 (1799)

존 필드-피아노 협주곡 No. 1 in E flat major H. 27(1799)

마티아스 바머트 (지휘)

런던모짜르트 프레이어/마이클 오르크 (피아노)

Matthias Bamert (Cond) London Mozart Players Michael O`Rourke (piano)

 

존 필드(John Field, 1782–1837,

작곡가, 피아니스트)

서양음악사상 최초로 [녹턴, Nocturn]을 작곡한 아일랜드 더블린 출생의 음악인이다.

 

아버지는 극장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음악가였고,

할아버지는 오르가니스트 였다.

존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분은 할아버지였다.

9살 때 더블린에서 공개 연주회를 열 정도로 음악적 재질이 뛰어났다.

 

존이 11살 때 베스(Bath)로 이사했고

할아 버지의 손에 이끌려 런던으로 가서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제작자였던

무치오 클레 멘티(Muzio Clementi)에게 맡겨졌다.

17살 때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초연했고 연주가로서도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1801년, 피아노 소나타집을 출판하면서 그 작품 을 클레멘티에게 헌정했다.

그 해에 존은 클레멘티를 수행해서 파리, 빈, 러시아를 방문했다.

스승이 만든 피아노를 시범 연주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러시아 방문 후 클레멘티는 런던으로 돌아갔지만 존은 남기로 했다.

 

그곳에서 존은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상당한 경력을 쌓을수 있었다.

모스코바와 페테르부르크를 오가며 활동하던 가운데

1810년에 샤르팡티에라는 프랑스 여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 그리 행복하 지는 않았다고 한다. 결국 둘은 곧 헤어지고 말았다.

 

가르치는 일로 많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낭비벽도 심했던 것이

당시 그의 사는 모습이었다.

1831년, 직장암에 걸려 고통을 겪게 되자 치료를 위해 런던으로 돌아갔다.

다소 호전이 되자 파리를 거쳐 러시아로 돌아가는 여정에 올랐다.

 

파리에서 리스트의 연주 를 듣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물지는 않나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이때의 일이다.

나폴리에 잠시 머문다는 것이

그가 쓰러지는 변을 당해 9개월로 연장되면서

그곳 러시아 가족의 도움을 받았고,

체르니의 손님으로 빈에 들려 3번의 콘서트를 갖고 1835년에 모스코바에 도착했다.

 

모스코바에서 존은 그의 마지막 녹턴들을 썼다.

1835년, 모스코바에서 사망했다.

존은 종교관이 애매했다. 양친은 개신교 신자였고

그 역시 가족의 종교에 순응하는 시절을 보냈지만 

막상 결혼식은 가톨릭 성당에서 올렸으니 뭔가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이제 이승에서 떠나야 할 시간이 됐을 때

친구의 주선으로 임종을 지켜줄 성직자가 와서

“당신의 종교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존 왈 “나는 클라비시스트(clavicist)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의 종교는 피아 노였던 것이다.

 

존 필드의 가장 중요한 성취는 단일 악장 형태의 즉흥곡적 성격이 짙은

18곡의 <녹 턴>을 씀으로써 이 악곡의 창시자가 됐다는 사실이다.

1812년에 처음 3곡의 녹턴을 썼으니

그 해는 새로운 음악 녹턴이 발명된 해로 기록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 감흥이 넘쳐나는 그의 녹턴은

쇼팽에게 영향을 끼쳐 그로 하여금 21곡 의 녹턴을 쓰게 했다.

1831년에 존의 녹턴을 들은 모셀레스(Moscheles)는

"황홀한 레가토, 부드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의 터치"라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출처]곽근수의 음악가이야기

 

[Bochum:scholle/25.09.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