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시/이정하
다시 제자리에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 모습이지만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같지를 않네.
꽃이 떨어지고
이 봄이 지나가면
그만큼 자신도 늙어가는 것을.
내년에도 다시 꽃은 피겠지만,
그 누가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수 있으리.
흐르는 세월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가 있었다.
지나는 순간순간이 아까워 허둥지둥하던 그 시절,
흐르는 시간보다
내가 더 빨리 걸어가면 되지 않을까
못내 애를 태우며 조바심을 치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가 흐르고 말았다.
흐르는 것이 어디 세월뿐이었으랴.
바람도 흘렀고 산천도 흘렀고
나도 흘렀고 너도 흘렀다.
우정도 흘렀고 사랑도 흘렀고
꿈도 희망도 삶도 흘렀다.
또 그것들은 다시금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다.
흐르는 것의 그 속절 없음이여..
그러고 보면
흐르지 않는 것이라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흐르고 모든 것이 변한다.
흐르고 흘러 제자리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번 지나가면 그뿐,
지금의 자리, 지금의 순간으로 돌아올 길은 영영 없다.
그러니 어찌 소중하지 않으랴.
어찌 간절하지 않으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지금 이 순간 내 눈빛에 담기는 모든 것들이.
이정하/돌아가고 싶은날의 풍경 중에서
천천히 가고 싶었습니다.
내 삶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몰라도
가는 동안,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음미하고 싶었습니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달라지는 세상,
그 세상의 숨소리 하나라도 빠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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