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세상]

귀뚜라미 죽이기 / 산해경(山海鏡)

scholle 2013. 12. 14. 18:41

 

[귀뚜라미 죽이기 / 산해경]

 

이슥한 창가에서 달빛이라고 끄적이다가

문득 별이 보고 싶어져서 창문을 열었는데

 

어디서 또르르.. 또르르.. 달빛을 깁는 별빛 절창

시가 그만 또르르 굴러가고 말았다

 

손뼉을 딱!

솔던 귀가 죽은 듯 잠잠하다

 

[눈 / 산해경 ]

 

보리피리 품고 은하수 건너 숨차게 달려온

손이 흰 여자가

한숨같이 깊은 홀아비 꿈 속에 들어와

햇목화 솜이불을 가만히 편다.

 

[겨울 오동 /산해경]

 

무성한 번민의 잎 미련없이 벗어 놓고

찬이슬에 몸 씻고 동안거에 들어갔나

피안의 언덕 텅 빈 바람 소리 낮추고

버릴수록 고여 드는 그리움

 

[고백 / 산해경]

 

희비의 언덕 불모지를 향하여 떠나지만,

결국 자기의 눈물샘에 찍어 쓰는

가련한 한 줄의 시가 되고 말아

 

먼 후일,

자기 십자가를 진 카인이 되어

사랑은 오직 내 안의 그대뿐이라고 ...

 

마모(磨耗) / 산해경(山海鏡)

 

굼실굼실 세월의 강에 궁굴린 이순(耳順)

아홉 굽이 긴 고랑에는 빈 깃대만 바람 앞에 서 있고

세파는 모래톱에 수만 갈래 길을 냈다

 

찍어대던 부리는 세월 따라 흘러가고

어느 님의 호숫가에 찰랑거리고 있을까.

 

이제는 안으로만 쨍쨍 울리는,

맑은 물에 갓 헹구어낸 단순한 언어로

그래서 동그란,

어디서 한 번 본듯한 미소로만 남아라

 

[Bochum:scholle/14.1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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