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세상]

향수(鄕愁) 정지용

scholle 2014. 12. 30. 14:34

 

향수(鄕愁)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