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신의 분노(忿怒)
연일(連日) 신문(新聞)과 방송(放送)에서 톱 뉴-스로 취급(取扱)하고
이곳 독일에서도 신문新聞)과 방송(放送)으로 매일 긴급 뉴-스로 취급되는
한국인들의 아프칸 인질(人質) 사태를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몇자 적어 보고자 한다.
복잡(複雜)한 종교(宗敎)의 모태(母胎)를 찾아 언급(言及)하거나
어느 종교(宗敎)의 민감(敏感)한 부분(部分)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바도 없고
관심(關心)도 없으니 일단 언급(言及)을 피하기로 한다
다만 여기 독일땅 에서 보고 들으며
그들(아랍인)과 함께 몸으로 부딧치며 살아온 경험(經驗)으로 몇자 적어 보기로한다
독일은 이미 기독교(基督敎)가 쇠퇴(衰退)하여 교회(敎會)가 텅텅 비고
이제는 나이를 먹어 늙어버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거치는곳
이상의 의미(意味)밖에 없다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것이다
독일의 교회(敎會)는 소위 한국에서 처럼 연보(捐補)나 십일조(十一條)
혹은 감사헌금이라는 명목(名目)으로 돈을 받는일이 없다
그리고 더구나 교회(敎會)가 부자(富者) 되는 일도 물론 없다
그럼 교회(敎會)는 어떻게 운영(運營)되는가!
종교세(宗敎稅)로 운영(運營)된다.
종교세(宗敎稅)란 종교(宗敎)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누구한테나 부과(附課)되는 정부에서 행하는 종교세(宗敎稅)다
나는 특별한 신앙(信仰)은 없지만
신앙에 관한한 심오(深奧)한 철학(哲學) 또한 없는 사람이기에
이왕이면 신은 존재(存在)한다라는 전제하에 30년이 넘는 세월(歲月)을
종교세(宗敎稅)를 내고 살아왔다
다시 말해서 일단 성년이(18세)되면 종교(宗敎)란에
종교의 유무를 체-크하고 종교(宗敎)가 있으면 세금을 띠고
종교가 없다면 물론 세금을 띠어가는법이 없다
전혀 강제성이 없는 본인(本人)의 결정(決定)에 따라 세금의 유무가 결정된다.
독일의 작금(昨今)의 기독교(基督敎)의 현실(現實)은 참담(慘憺)하다 할만큼
쇠퇴(衰退)해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적지않은 종교세(宗敎稅) 띠어가는것을 원치않아
무종교(無宗敎)란에 싸인을 하고는 세금을 내는것을 거부(拒否)한다
카톨릭의 입장(立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많던 카톨릭의 인구(人口)가 점점 줄어들고 경영난(經營難)으로 힘들어진
카톨릭 재단에서도 사회복지(社會福祉)를 위한 규모를 줄이고
갈수록 어려워진 현실을 개탄(慨歎)하지만 좋아질 희망(希望)이 보이지않는다
이러한 현실(現實)에서 ...
모슬램의 급성장은 무시무시할 정도다
연일 35도를 오르 내리는 뙤약볓에서도 알라신의 계시대로
두건과 차도르로 몸을 휘감은 여인들이 독일의 대도시를 활보하면서
알라신의 계시를 철저히 지키고 사는 모하멧을 추종하는 이들은... .
개인적(個人的)으로 만나보면 참으로 인간적(人間的)이고
유교사상(儒敎思想)을 받고 자란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윗사람 공경하고 친인척 관계가 따뜻해서 심히 인간적(人間的)인 사람들이다
허나..
종교에 관한한 이들은 철저(徹底)하고 절대적(絶對的)으로
알라신의 계명(戒命)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종교에 관한한 절대 양보하지않는다
만약에 저들이 믿는 알라신을 모욕(侮辱)하거나
농담(弄談)으로라도 폄하(貶下)하는 발언(發言)을 하면 당장 칼맞을 각오를 해야한다
실제로 농담(弄談) 몇마디에 칼에 찔려 목숨을 앗긴 독일 사람들이 있다
독일의 비어있는 성당이나 교회를 사들여 알라신을 경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이들이 독일인들의 지탄(指彈)의 대상이 되고 증오(憎惡)의 대상(對象)이 되는것은
모두가 종교에서 오는 이유(理由)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싫어하는 만큼
터키인들이나 아랍인들을 싫어하는 이유(理由)가 독일에서 행해지는
독일인들의 정서에 맞지않는 종교 문제(問題) 때문이다
아울러 그들 대로의 종교(宗敎)와 신앙(信仰)을 가지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아프칸이나 다른 아랍권의 나라에 가서 기독교를 선교(宣敎)한다면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意味)를 주는지를 한번쯤은 생각해 두어야 할 일이다
그들에게 종교(宗敎)란 삶 그 자체이다.
그들에게 종교(宗敎)없는 삶이란 죽음 그 자체다.
비대하고 살찐 한국의 기도교인들이
벌이는 선교(宣敎)라는 이름의 기독교 선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그들은 살아가고 있다
선교(宣敎)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것이지
이미 종교적으로 모태(母胎)의 신앙(信仰)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그들에게
선교(宣敎) 한다는게 타당한 일인가?
생명(生命)이 위험(危險)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목을 내 놓고 적진에 들어간 꼴이요!!
기름을 들고 불에 뛰어든 불나방 꼴이다,
어째서 교회(敎會)의 장(長)이라는 사람이 그러한 사실을 간과(看過) 했을까?
아니면 무지(無智)한 탓이었을까?
참으로 아랍권에가서 그들의 종교를 바꾸라는 발상(發想)부터가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이고 교만(驕慢)의 극치라고 말하고 싶다
바로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이기심과 무지의 소치다
절대 불가능(不可能)한 일을 가능(可能)케 할수있다고 가르쳤다면
그에게 직접 현지(現地)에가서 그들과 1년만 아니 반년만 살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신앙(信仰)이 철저한 기독교(基督敎)인에게
당신 오늘부터 종교를 불교(佛敎)로 바꾸라고 한다면 과연 그들은
무었이라고 답변을 할까?
그들이 살아서 부모형제(父母兄弟)와 다시 상봉(相逢)할수 있었다는것은
기적(奇跡)에 가깝다
그들의 말은 진실(眞實)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교(宣敎)를 목적(目的)으로 아프칸에서 인질로 잡혔다가 살아왔다면
그것은 순전히 인질값을 톡톡히 치룬덕이다
아무리 정부에서 실무자들이 거짖을 말한다 해도 알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는것이다
알라신앙으로 철저히 무장을 하고 거침없이 자신의 삶을
신께 드리기로 약속하고 종교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었이 아쉬어서
그들을 살려 돌아가게 했을까!
더구나 선교(宣敎) 한다고 들어온 이가 갈리도록 증오하는 기독교(基督敎)인들을..
그들에게 필요(必要)한 무기(武器)를 사들이고 전사(戰士)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必要)했을것이고 그 비싼 국민의 세금으로 그들은 행운(幸運)을 안았을 뿐이다
실지로 인질(人質)들은 파리 목숨이었고 죽은 목숨들이었다,
잠시 상상(想像)을 해보자.
교회(敎會)의 목회자인 당사자가 인질(人質)로 잡혔다면
과연 그가 종교적인 사명감(使命感)과 믿음으로 총칼 앞에
그리고 죽음 앞에 당당하고 떳떳할수 있었을까?
결국은 무지(無智)와 경거망동(輕擧妄動)으로 아까운 젊은 목숨들을 버렸다
남의 귀한 자식들의 목숨을 담보로 그가 지금 무었을 하고 있는가 ..
묻고싶다
제발 부끄럽고 책임(責任)없는 일들은 하지말자,
남의 땅에 가서 선교하는 돈으로 대한민국의 불쌍하고 없는
가난한사람들을 구제 하는것이 훨씬 보람있는일이요, 가치있는 일이다
신앙(信仰)이라는 이름으로 색칠을 하고
타인(他人)의 인명(人命)을 천시하고 소모(消耗)하는 우"를 다시는 범하지 말자.
종교를 바꾸느니 그들은 차라리 자결을 한다는것은 세상(世上)이 다 아는일이다
오직 무지(無智)한 사건을 만든 한사람(?)을 빼고는....
내 주위에도 수없이 알라를 모태(母胎)신앙으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있다
그들이 말한다. 알라신의 분노(憤怒) !
알라신의 저주(咀呪)라고.
[글/최성무] [Bochum:scholle/30.0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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