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가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어제는 ...
그리도 하늘이 맑고 파랗고 곱게 물 들더니
오늘은 추적거리며 하루종일 비가온다
수풀에 떨어지는 빗물이
잎새들과 희롱하며 토닥 토닥 웃는소리...
<
추수가 끝난 자리엔
어느덧 가을이 스며들고 풀벌래들의 합창이 한창이다
어디선가..
도토리 입에 문 부지런한 다람쥐 한마리
벌써 겨울을 준비하는가보다
80 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 두분이
흠뻑 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고있다
안개와 비속에 깊게 물드는
영롱한 신비의 느낌은...
진실로 신이 주신 귀한 축복이다
조용한 침묵이 안개처럼 잦아드는 날이다
가을 / 조병화(趙炳華)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 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거
가을은
구름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가치있는 삶이란....
남의 눈에 띄지않고 겸허하고 평온한 가운데 이루워지는 것이라던가!!
천둥과 번개가 치는 곳에서
밭을 갈거나 집을 지을수 없듯
위대하고 참된 삶은...
언제나 단순하고 조용한 가운데 열매를 맺는다"..
어느 선인이 한 말이다.
가끔 만나는 ...
비를 맞으며 조깅을 하는 사람들 외에는
한적하고 평온한 공원의 솦속엔 ...
성급한 귀뚜라미 우는소리
비오는 소리
낙옆을 굴리는 바람소리뿐...
이렇게 비오는 날이면 걷는다
삶은 걷는 일이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불거나
걷는일은 자신을 향해 찾아가는 가장 빠른 길이다
진정한 행복이란...!!
어떤 사람으로 부터 받는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으로 부터 얻어지는 조용한 미소 같은것은 아닐런지...
안개 자욱한 공원길에 비가온다
잔잔한 평화의 선물을 골고루 나눠 주면서
신의 축복이 내린다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엿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최대의 행복을 얻고자 한다면
최소의 악도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가..!!!
그랬으면 좋겠다..
최대의 행복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할지라도
악한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고독해라!..고독해야 사람이다
고독하지 않은 사람은 참 인생의 가치를 모르는 법이다
학창시절..
무교동의 어느 대포집에서 술 한잔들면
온 세상을 다 가진듯 ...
열변을 토해내던 선배의 말이다
주머니에 돈 몇푼 생기면 늘 만나자고 전화하던...
그분은 지금 어디 계실까..
몹씨 보고싶어진다..
Im Nebel / Hermann Hesse
Seltsam, im Nebel zu wandern!
Einsam ist jeder Busch und Stein,
Kein Baum sieh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기이하구나, 안개 속에서 거니는 것은!
고독하다, 저마다 덤불과 돌은.
어느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저마다 홀로다.
Voll von Freunden war mir die Welt,
Als noch mein Leben licht war;
Nun, da der Nebel fällt,
ist keiner mehr sichtbar.
친구들로 가득차 있는게 나에겐 이 세상이었다,
아직 나의 삶이 밝았을 때에는...
이제, 안개가 드리우니
아무도 볼 수 없구나.
Wahrlich, keiner ist weise,
Der nicht das Dunkel kennt,
Das unentrinnbar und leise
Von allen ihn trennt.
진실로, 어느 누구도 슬기롭지 못하다,
어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는,
어둠은 어쩔 수 없이, 그리고 조용히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떼어놓는다.
Seltsam, im Nebel zu wandern!
Leben ist Einsamsein.
Kein Mensch kennt den andern,
Jeder ist allein.
기이하구나, 안개 속에서 거니는 것은!
삶은 고독함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저마다 홀로다.
비가 오는날은 ...
비가 오는날은 ...
나는 귀뚜라미 처럼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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