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lorca섬으로 떠나기 위해 새벽같이 출발해 공항에 왔다
늦은 계절이건만 스패인의 섬들로 햇볓을 찾아 떠나는 휴양객들이
공항에 가득히 줄을 서 있다
팔마 데 마요르카/Palma de Mallorca
위치: 유럽/스패인
인구(gemeldete Einwohner) : 983.397 (Stand: 2010)
davon leben 401.270 in der Hauptstadt Palma.
면적: 3640㎢
주요수입 :관광
Balearische Inseln(발레아레스 제도)
발레아레스 제도의 대표적인 섬, 팔마 데 마요르카의 역사"
팔마시 전경(하단 둥근 건물은 벨베르성 모층)"
팔마(Palma 또는 Palma de Mallorca라고 부름)는
스페인 자치지역의 하나인 동시에
역사적으로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에 속하는
발레아레스 제도(Balearic Islands)의 주도(州都)이자
행정중심지다.
스페인 본토에서 약 100km 떨어진
지중해의 섬들로 이루어진 발레아레스 제도는
남한의 약 20분의 1인 4,992㎢의 면적에
약 98만 3천여명이 살고있다.
마요르카(Mallorca)는
대략 우리나라 제주도의 두배정도 크기이다
통칭....
마요르카(Mallorca)
메노르카(Menoreukaseom)
이비차(Ibiza)
포르멘테라(Formentera) 등 4개의 큰 섬과
그밖의 작은섬 등 총 16개의 섬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를 Balearic Islands라 부른다.
가장 큰 섬이 마요르카(Mallorca)이고
이섬의 대표적인 휴양항구 도시가 팔마(Palma)다..
5분마다 삼백여명의 여행객들을 태우고 한대씩 뜬다는 비행기들이
이륙을 하기위해
앞 비행기를 따라 출발선으로 이동하고있다
Air Berlin의 꼬리를 물고 웅장한 기체소리와 함께 떠 오른 비행기가
구름층을 뚫고 하늘높이 치솟아 오르자 ..
푸르른 하늘이 따가운 햇볓과 함께 찬란한 미소를 보내고있다
만피트의 상공에서 950km의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전혀 속도감을 느끼지도 못했는데
뜨거운 커피와 간단한 아침식사를 끝내자
어느새 Mallorca의 상공에 다다랐다
정확하게 2시간5분이 걸렸다
만피트의 상공에서 머리위를 날아가는 또다른 비행기만 없었다면
비행기가 서 있는듯한 착각을 할 정도로 조용한 하늘의 공간...
어느덧 Palma의 모습이 구름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는,
카나리아제도 (Canary Islands) 그란 카나리아 섬 (Gran Canaria Island)
으로 휴가를 갈 생각이었으나...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서 4시간반이나 걸리는 지루함 때문에
이곳으로 휴가지를 바꿨다
어느 독일인이 그랬다던가!
카나리아제도 (Canary Islands)와
발레아레스(Balearic Islands)제도의 섬들을 보유한
스패인은....
관광수입으로만으로도 먹고 살수있을거라고..!!
농담으로 한 예기겠지만...
스패인의 축복받은 날씨는 유럽인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임에 틀림없을것같다..
Canyamel hotel 까지 우리를 태우고 갈 뻐스가 기다리고있다
1시간 15분을 타고 가는동안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마음에 들어 이여행이 즐거울것같은 예감이든다..
Malloca 섬은
유럽대륙과 아프리카대륙 사이 지중해의 한 가운데 놓여있는 섬이다.
스패인의 허리중간 Bacelona와 Valencia와 삼각형을 이루는
지중해의 바다 중간에 뚝 떨어진 Malloca 섬은
Ibiza. Denia.Formentera 등등의 섬들중에서 가장 큰 섬이기도하다.
날씨가 좋고 풍경이 아름다운 말로카(Mallorca)는
여름 휴가지로서는 최적의 휴가지로서
우울한 회색빛 하늘과 비를 피해 날아온
독일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기도하다
이곳의 반대편에있는 Ballermann을 피해서
대부분 나이드신분들이 오는 이곳으로 여행지를 정했다
Ballermann (Platja de Palma)은
독일의 젊은이들이라면 한번씩 다 가고 싶어하는곳
술과 춤
그리고 귀청을 찢는듯한 노래와 마리화나.
밤이면..
술에취해 비틀거리는 젊은이들과
모래사장 여기저기에서 사랑의 열기로 후끈거리는 곳이기도하다
이곳의 역사는
기원전 1,000년 탈라요틱(Talayotic)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백 년에 걸쳐 로마, 비잔틴 등에 의해,
8~13세기 초에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지배를 받았고,
18세기 초까지 아라곤 왕가(Crown of Aragon)와
그 이후 스페인의 통치를 받게 된다.
특히 팔마(Palma)라는 이름의 기원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로마는 아프리카 주요 도시들로 가는 출발지로서
마요르카 섬에 팔마리아(Palmaria)를 세우게 된다.
이곳이 바로 지금의 팔마인 것이다.
눈에 띄는 로마시대 유물을 찾아 볼 수는 없으나,
지금도 시 중앙부를 팔 때마다 고대유물들이 발견되곤 한다.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팔마는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이후 707년부터 1229년까지 이슬람의 영향권에 있게 된다.
1229년 12월 31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의 해방과 함께
팔마는 드디어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고,
아라곤의 하이메 1세에 의해 마요르카 섬의 수도가 된다.
이후 스페인의 카를로스 3세는
팔마와 다른 항구도시 간 교역을 자유화시키게 되는데,
이로써 팔마의 상업활동이 재개되고
도시는 다시 한 번 활력을 찾게 된다.
나폴레옹의 침략시기 팔마는 수많은 난민들이 유입되고,
마침내 발레아레스 제도의 주도가 되면서
경제성장과 인구의 증가는 물론,
20세기에 들어서면서는 도시확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천혜의 자연경관,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지닌 도시"
300일 이상의 쾌청한 날씨와
겨울에도 15도 여름에는 27도 전후의
전형적인 해양성기후를 지녀
농업과 축산업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지중해의 바람을 이용한 풍차로 길어 올린 관개수는
오렌지, 올리브, 포도 등을 재배하는 데 이용되는데,
로마시대 이후 천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올리브 나무를 섬 도처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이렇듯 풍부한 농작물이 섬 중앙부의
비옥한 땅을 메우고 있고,
중심부를 사이에 두고 두 줄의 산맥이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해안선은 약 400km에 걸쳐 펼쳐져 있는데,
서쪽지역의 산악과 깎아지는 듯한 절벽과는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곳의 행정중심지이자 대표적인 휴양도시인 팔마는
마요르카 섬의 남쪽 해안가에 팔마만(Bay of Palma)을 따라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져 있다
팔마의 인구는 약 43만 6천 명인데,
이는 마요르카 섬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수치다.
특히 팔마는 수많은 유럽 관광객을 고객으로 하여
세계명품과 지역토산품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고급 상점들과 레스토랑, 카페 등이 베일러 광장,
하이메 3세 거리, 람블라 거리, 레이나 광장 등을
중심으로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팔마의 도시공간은
전체적으로는 중앙에 대성당이 위치하고
해안과 성벽으로 둘러싸인 유서 깊은 구시가지역,
움푹하게 들어간 팔마 만을 따라
20세기 초부터 고급호텔 등이 들어서 있는 신시가지역,
성당 근처의 산책로를 따라 이어지는 항구지역 등 3개 지역으로 나뉜다.
1950년대 이후 촉진된 인구증가 및 관광산업 증대는
새로운 도시적 토지수요를 창출하였는 바,
팔마의 도시확장은 해안지역과 주요 교통루트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팔마는 오랜 기간 이민족과 아라곤 왕가의 지배의 영향으로
지금도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시대별로
다양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팔마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중해의
상업교역 중계지였고,
최적의 기후조건에 기인하여 전통적으로는
농업과 목축업이 성행하던 곳이었다.
이렇게 평범하던 섬이 천혜의 자연환경,
온화한 해양성기후, 풍부한 역사·문화 유적과
예술적 자원을 토대로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휴양지가 된 것이다.
특히 팔마는 2004년 투자전문지인 배런스(Barron’s)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7대 도시에
포함되기도 하였는데,
이들 도시들은 모두 편리한 교통, 낮은 범죄율,
쾌적하고 온화한 날씨, 다양한 레저·문화시설 등이
타 도시보다 월등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팔마는 스페인 왕족들의
여름휴양지로 이용되고 있고,
루이 살바도르 대공이 이곳에 땅을 구입해 저택을 지었으며,
미국의 유명한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
세계적인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 등 유명 인사들이
별장을 사들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Spiegel)은
무엇보다도 연중 내내 지속되는 온화한 해양성 기후와
연중 300일 이상의 쾌청일수 등을
이곳이 유럽인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꼽고 있다.
특히 변덕스럽고 비가 자주 오는 날씨 탓에
북유럽인들은 비행기로 2~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팔마를
피한지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유럽을 대표하는 관광·휴양지인 만큼
매년 7백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으며,
이를 수용하기 위하여 스페인에서 가장 많은
숙박시설(약 1,300개 정도)을 자랑하는 곳이
바로 이 팔마이기도 하다.
특히 1903년에 세워져 백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그란 호텔은...
그 건축물 자체만으로도 명성을 지니고 있다.
섬으로 접근할 수 있는 교통도 편리해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데니아, 알리칸테 등과
배편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기 항공편, 수시 항공편이 파리, 니스 등
유럽의 웬만한 도시로 하루에도 수십 차례 운행되고 있다.
특히 팔마 데 마요르카 국제공항(Son Sant Joan Airport)은
마드리드 공항과 바르셀로나 공항에 이어
스페인에서 세 번째로 큰 공항으로
팔마 시내에서 동쪽으로 약 8km 정도밖에 떨어져있지 않아
시내로의 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여름철에 유럽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 중 하나로
약 6.3㎢ 부지에 4개의 터미널과 연간 약 2,500만 명의
처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지속적인 방문객 증가에 대비하여 팔마시 당국은
2010년까지 연간 3,200만 명,
2015년에는 3,800만 명을 처리할 수 있는 공항확충계획을
수립 해 놓고 있기도 하다.
Malloca의 유명한 치즈 상점들..
우리집 할망구도 열심히 뭘 찾고있네.^^
삶에 대해 아주 긍적적이고...
줄기차게 흥미롭고 호기심이 많은 할망구
작은 항구를 따라 끝없이 뻗어있는 음식점들과 술집들
그리고 가지각색의 가개들로 가득하다
섬 전체가 비슷비슷한 모습이다
쇼팽과 그의 연인 조르쥬 상드가 머물렀던 카르루지오 수도원"
1950년대 초부터 시작된 서유럽 국가들과의 국교회복 정책과
스페인의 UN 가입 등에 힘입어 팔마의 관광산업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1950년 10만 명이던 방문객이 이듬해에는
두 배로 성장하였는데
이는 ‘Honeymoon Mallorca’라는 캠페인과
공식적인 관광코스 개발 등 노력의 결실이었다.
1959년, 스페인 정부는 산업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데,
이는 사회적·경제적 성장과 함께 유럽인들의 휴가 및
레저욕구증대와 맞물려 다른 유럽지역보다
상대적으로 값이 싼 이곳이 유럽의 새로운 관광·
휴양의 메카로 자리잡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어 1960년에 국제공항이 문을 열면서
이곳의 방문객 수는1960년 50만 명에서
2001년에는 공항을 통해서만 1,920만 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곳 관광산업의 성공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1974년 에너지 위기와 경제공황은 스페인 내전 이후
지역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황은 팔마시 정부로 하여금
기존 관광정책의 통합·조정 필요성과 함께,
관광개발과 더불어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마요르카 관광협회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 전통,
환경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경주하게 되는데,
풍차, Musical Mallorca, Winter in Mallorca 등의 복원과
프레스센터, 저널리스트들을 위한 Image Bank 설립 등이
그 예들이다.
오늘날 관광협회는 관광 관련 이슈나 정책들을
토론할 수 있는 포럼으로서,
그리고 지역의 관광산업 전략을 결정하는 기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1세기가 넘는 동안 관광산업을
주요 지역산업으로 하다 보니 팔마는 관광과 관련해
상당한 노하우를 보유하게 되었다.
바가지요금이나 불친절에 대한 철저한 단속은 물론이고,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쇼팽이 그의 연인 상드와 함께 요양차 잠시 머물렀던
수도원의 홍보 및 관광상품으로의 개발은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밖에 지역 향토산업의 관광자원화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팔마시내는 각지에서 모여 든 방문객을 대상으로
오렌지·올리브·포도 등 농산물의 가공제품 및
유리·신발·도자기 등의 수공업제품을 다양하게 취급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마요르카 인공진주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다.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의 발자취"
팔마가 우리에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 선생이 작고할 때까지
20년간 살았던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익태 선생(1906~1965)은
당시 베야스 아르테르 협회 주관으로 추진된
마요르카 심포니 오케스트라 창단 상임지휘자가 되어
1947년에 팔마에 정착하게 된다.
안익태 선생은 같은 해 1월 14일
팔마 중앙극장에서 가진 창단연주회를 시작으로
1959년까지 마요르카 안팎에서 232회의 연주회를 가졌으며
마요르카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재로
‘마요르카 교향시(1948)
프로멘토르의 로 피(1951)’등을 작곡하였다.
1836년 가을에 다구 후작부인(리스트의 연인)집에서
조르즈 상드(1804~1876)를 리스트에게서 소개 받았다.
상드는 작가 오로르의 필명이며
그녀는...
16세 때 수녀원을 졸업하자 곧 지방의 뒤드방 남작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은 후 26세에 이혼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파리로 올라와 남장을 한 괴짜 작가로
활동하면서 여러 남자를 편력하다가
쇼팽을 만나기 전에는 연하의 시인 알프레드 뮈세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사랑에 빠졌다가 헤어진 후였다.
쇼팽은 상드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해 만나지 않고 있다가
1837년 최초의 런던 연주를 다녀와서 다시 만나면서
1838년에는 이들의 연애는 세상에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 되기에 이르렀다.
1838년 11월에 두 연인은 상드의 두 아들을 데리고
점차 악화되어 가는 쇼팽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스페인령의 마요르카섬으로 갔다.
마요르카섬에의 여행은 처음에는 행복했으나
그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신앙심이 깊은 주민들의 홀대로 숙소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부득이 전망은 좋은 언덕에 있는 발데모사수도원뒤에
옛날에 수사들이 쓰다 방치한 눅눅하고 차가운 집으로 이사했는데,
바람이 많아 쇼팽은 ‘바람의 집’이라 불렀다.
섬에 도착한 후에 쇼팽은 흔들흔들하는
낡은 피아노를 빌려 썼으나,
파리에 두고 온 자신의 플레엘 피아노
(Pleyel : 1757~1837,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가
필요해서 붙여 왔는데,
12월 20일에 섬에 도착한 후 세관 통관(세금 300프랑 지불)을 거쳐서
39년 1월 5일에야 찾아올 수 있었다
(이 피아노는 현재 발데모사 박물관에 있는 쇼팽룸에 전시되어 있다).
Chopin Preludes op. 28, NO.15
빗방울 전주곡 NO.15 D flat장조, Sostenuto
쇼팽은 발데모사 수도원에서 폴로네이즈 A장조와
녹턴 F단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작곡하고,
24개의 전주곡을 완성했다.
여기서 작곡한 그의 전주곡들 가운데
빗방울 전주곡은 가장 널리 알려져 사랑을 받는 곡이다.
고음부는 빗방울 소리같은 단조로운 음향이 끝임없이 울리고,
저음부는 울적한 선율이 구슬프게 깔리는
이 곡에는...
애처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쇼팽의 약을 구하러 팔마로 나갔던 조르쥬 상드가
비가 억수같이쏟아지는 밤길을 되짚어 돌아오니
방안에는 더욱 세찬 빗방울이 건반에서 흘러 넘치고 있었다.
"사랑하는 조르쥬 내 앞에 서있는 건 분명 당신이겠지?
난 당신이 급류에 휘말리는 환영을 봤단 말이오.
대체 어찌된 일일까,
내 가슴도 분명히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햇살이 흘러 넘치는
발데모사 수도원의 지붕.
하지만..150년 전 어느 폭풍우 치던 밤
쇼팽이 착각했던 물소리는 바로 저 지붕 위에 떨어지던
비의 음향이었던 것이다.
해변의 레스토랑에서는 음식을 시키거나
맥주를 마시는 여행객들...
우리는 바다를 보며 아이스 크림을....^^
끝없이 이어진 상가들
부지런히 땀흘린 옷까지 뻐스에서 갈아입고
돌아다니더니 만족한 얼굴로 돌아오기에 뭘 사왔는지 궁굼했더니...ㅋ
나중에 보니 자식들 선물을 하나씩 준비하느라고
그렇게 오래 돌아다녔나보다...!!^^
개도 더웠는지 몇번이나 바닷속으로 들어가 헤엄을 치고...
야자수와 소나무만 울창한 이곳에서
파란 나팔꽃을 보곤 얼마나 반가웠는지...
흥정이 끝났는가보다...^^마차를 타는 아가씨
27도의 더운날씨에 온몸을 휘감은
아랍여인들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 해 본다
빵조각 몇개를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한다..!!
뽀빠이 아줌마의 우람한 팔뚝..
남편의 팔뚝도 부인 못지않다..!!^^
더위에 지친 아가씨들이 뻐스를 기다리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자유로운 모습의 일면을 볼수있다..!
숲과 바다가 한폭의 그림처럼 조화를 이룬 모습들을 곳곳에서
찾아볼수있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Fkk라는걸 해 밨다..ㅋㅋ
솦속에 쌓인 암벽사이로 아무도 찾아 오기전에는 볼수없는
숨어있는듯한 너무 좋은 장소를 발견하곤...
휴가내내 이곳에서 벗어버린 즐거움을 마음껏 즐겼다..
뜨거운 햇볓과 함께 자연인으로 돌아간 자유스러움을
이해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ㅋ
멀리 돗단배 떠 다니고 빵과 과자 몇개 들고가면
갈매기와도 친구할수있는곳
바이~바이 ... 빵이 떨어졌네...!!^^
섬 주변을 관광하는 여객선
양팔을 휘 저으며 하늘을 향해 춤사위를 벌이는 늙은 소나무들....
섬주변의 이곳저곳을 매일 등산을하며 돌아다녔다
이렇게 건강하게 잘 돌아다닐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하루에 평균25km 강행군에도 끄떡없이 숄래보다 더 잘 걷는
할망구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섬주변을 걷는 탓이리라!!
시원한 바다 바람과 섬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등이
전혀 힘들거나 피곤을 느끼지 않게 하는가보다
3시간을 걸었다!!
이제 돌아가는 길도 또한 그렇게 시간이 걸리겠지!!
배도 고파지고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다
잘 쫒아오던 할망구가 피곤한지 쉬었다 가잔다!!..
그러면 그렇치..!!ㅋ
그래도 깡다구가 대단하다,
숄래 걸음이 빠르다는것을 감안하면 할망구의 체력도 대단하다
기특한 마음이든다..^^
산자락 8부능선에 위치한 바다가 보이는 전망좋은 숲속에 서있는 이집에서
들려오던 아코디언 음악소리를 들으며 ...
이집 주인은 독일사람이 아닐까 생각 해 밨다
두번째의 등산로에서 만난 집주인은 역시 독일에서 온 할아버지...
연금에 들어가자마자 이곳으로 이사왔단다...
이사온지 7년째란다 .이제조금씩 스패인어를 할수있어
생활에 불편한점은 없단다..
이나저나 이곳은 90%의 여행객들이 모두 독일 사람들이니
어려울것도 없으리라 생각이든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잔잔한 삶의 모습들이 섬 전체에 가득하다
작은호수를 따라 이어진 긴 강물엔 온갖 조류들이 서식하고
이어진 조깅코스엔...
많은 여행객들이 땀을 흘리며 건강을 챙기는 모습을볼수있었다..!
석양이지는 바닷가엔 아직도 늦은 해수욕객들이 해변을 거닐고...
이곳에도 이제 가을이 오나보다
한 겨울에도 17도 정도의 따듯한 이곳에 딱 한번 눈이 온것은
10년전이라고한다..
두시간만에 다 녹아버린긴 햇다지만...
식사후엔 어둠이 지는 해변을 늘 걷곤했다
너무 아름다운 밤의 해변엔 갈메기 울음소리...
그리고 총총히 떠있는 밤하늘의 달과 별들이
손에 잡힐듯 커 보인다
인연이란게 무었일까!!
몇일전에 만난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그렇게 호기심을 보이고...
숄래가 식사하러 가는 날이면 반갑게 인사하며
맛있는 부위만 골라서 모아 두었다가 눈을 찡긋하며 주곤했다..
먼저 스프와 야채를 먹고
그다음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이사람들의 음식습관들은 저리 팽개처 두고...^^
숄래는 매일 왕새우만 먹어댔다..ㅋㅋ
등산후에 옆지기와 숄래가 먹어댄 음식과 후식들...숄래 배가 안나오면 그게 이상한거지..ㅋㅋ
왕돼지..!!ㅋㅋ
여행중에는 아무것도 생각 하지않기..!!
보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
걷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만 생각하기..
숄래의 여행관이다..^^
흘러가는 구름도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바위를 때리는 파도도
날고있는 갈메기도 모두가 음악이다
지금은...
모두가 숄래를 위한 시간이다
내일이면
내 생애에 다시는 만날수 없는것들이기에
지금 이순간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다
내일이면 추억의 저쪽으로 사라저야 하는...
마실것 먹을것 잔뜩들고 해변으로...!!^^
지금은 시간속에 녹아들어 눈을 감을 시간이다
깊이깊이 침잠해 가라않는 시간일뿐이다
루이제린저가 그랬던가!!
지금 남은 시간이 나에게 뭘 줄까 생각하기 보다는
이제 남은 생을 위하여 내가 무었을 줘야 하나를 생각할때라고!!...
옆지기는 지중해를 끌어안고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ㅋㅋ
오랜세월 많이도 고생시킨 할망구다
이제 남은 여생을 보상 받아야 할 시간이 남았다..!...^^!
항상 고통스러워했던 나의 달콤한 빈곤
한달 한달이 아름다운 모험이었고 세상은 찬란했오!
왜냐하면...
내가 아무것도 가질수 없어서 모든것을 원했음으로....
생땍쥐베리가 죽기전에 남긴 말이다
1838년....
쇼팽이 병든 몸을 이끌고 연인인 조루즈 상드와 함께
요양을 와서 한겨울을 아무도 모르게 지낸곳이
Mallroca섬의 산골 마을 발데모사의 까루뜨와 수도원이었다한다
그 당시
쇼팽은 24번 서곡을 이곳에서 작곡했고
상드는 "Mallroca의 겨울"을 집필했다고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손에 손을 잡고
해변을 거닐며 사랑했을 쇼팽과 상드를 생각하며
숄래의 마지막 밤을...
해변에서 오래오래 거닐어본다..
[쇼팽/빗방울 전주곡 OP.28-15]
[Bochum:scholle/12.1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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