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세상] 205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창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 백창우 이렇게,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 가문 가슴에, 어둡고 막막한 가슴에 푸른 하늘 열릴 날이 있을거야 고운 아침 맞을 날이 있을거야 길이 없다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대, 그 자리에 머물지 말렴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은 다시 시작되고 그 길 위로 희망의 별 오를테니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 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을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걸..

[시인들 세상] 2009.06.11

한 잎의 女子 /오규원

한 잎의 女子 /오규원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 그 한 잎의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女子만을 가진 女子, 女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女子, 女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女子, 눈물 같은 女子, 슬픔 같은 女子, 病身 같은 女子, 詩集 같은 女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女子, 그래서 불행한 女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女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女子.

[시인들 세상] 2009.06.10

유월의 언덕에서/풀잎

유월의 언덕에서/풀잎 누구에게나 뭉개구름 떠 오르고 구절초 눈썹에 이슬 맺는 곳이 있다 거기, 가난한 어깨에 별 하나 켜놓고 어제는 너무 깊고 내일은 너무 멀어 손가락으로 짚어보는 목소리가 있다 별빛 다가오는 소리다 여울물에 발 담그고 마주 보면 삶의 경계선 어디쯤 유성의 침묵이 반짝인다 침묵의 입술에 입술을 대고 오랫동안 비워둔 빛의 소리를 꼭 안아본다 고향 뒷산이 열린다 풀벌레 키가 크고 싸리꽃 별자리에 수북하게 모여들면.. 동무야, 황소 울음에 꼴 망태 한 짐이 즐겁던 벌거숭이 동무야 유월의 언덕배기에 뭉개구름 흐른다 My Memory - Robin Spielberg

[시인들 세상] 2009.06.05

인생은 혼자라는 말 밖엔 / 조병화

인생은 혼자라는 말 밖엔 / 조병화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 외롭다는 편지를 보내는 것은 사치스러운 심사라고 생각하시겠지요. 나보다 더 쓸쓸한 사람에게 쓸쓸하다는 시를 보내는 것은 가당치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리고, 나보다 더 그리운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그립다는 사연을 엮어서 보낸다는 것은 인생을 아직 모르는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겠지요. 아, 나는 이렇게 아직 당신에게는 나의 말을 전할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저, 인생은 혼자라는 말 밖엔..

[시인들 세상] 2009.05.26

이 순간 / 피천득/ 음악 (La Petite Fille De La Mer )

이 순간 내가 별들을 쳐다본다는 것은 그 얼마나 화려한 사실인가 오래지 않아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제 9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 그들이 나를 잊고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순간 내가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얼마나 즐거운 사실인가 두뇌가 기능을 멈추고 내 손이 썩어가는 때가 오더라도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이무도 어찌하지 못한 사실이다.

[시인들 세상] 2009.05.18

슬픈 인연 / 윤동주

슬픈 인연 / 윤동주 단 한번의 눈 마주침으로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슬픔은 시작되었습니다.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못본체 했고, 사랑하면서도 지나쳤으니 서로의 가슴의 넓은 호수는 더욱 공허 합니다. 자신의 초라함을 알면서도 사랑은 멈출 줄을 몰랐고, 서로가 곁에 없음을 알면서도 눈물은 그칠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서로가 한발씩 물러나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이들을 우린 슬픈 인연이라 합니다.

[시인들 세상] 2009.04.18

그리움이 불러도/박종영

그리움이 불러도 / 박종영 이제는 이별하는 시간을 조금은 알 것 같아, 젖은 목소리 들려와도 뒤돌아 보지 말고 눈웃음 일으켜 세우는 버릇도 숨기고 마음 안에 하얀 종이 펴고 이별을 적는다. 그리움이 불러도 애써 고개 돌리지 말고 푸른 어둠으로 사라지는 눈물도 감추고 빗소리 툭툭 걸어간 자리 고요가 명복을 비는 듯 한차례 이별을 쓴다. 한 줌 그리움이 향기로 남아 둥둥 떠다니며 새벽이슬 같은 그대 눈빛의 찬란함을 보기 위하여 메마른 세상 산골 물로 흘러가는 길에 또 한차례 이별을 기억한다.

[시인들 세상] 2009.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