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세상] 205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노천명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 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 놓고 밤이면 싫컷 별을 안고 부엉이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계호랑)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 하겠소. 노천명(盧天命)1912~1957 황해도 장연출생, 이화여전 문과졸업, 시원(詩苑) 동인, 여성특유의 예리한 감성과 특유의 청순한 서정시를 썼다. 그대로, 읽으면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그대로 전달이 되는 시다. 그러면서도 한적한 시골의 고향을 연상케 하는 이 시는....

[시인들 세상] 2009.03.05

이정하 / 없을까?

이정하 / 없을까? 아늑한 추억들이 안개 깔리듯 조용히 깔리고 말하지 않아도 가슴으로 사는 곳은 없을까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해서 사는.. 그리하여 괴로운 깨어남이 없는 영원한 숙취의 세계는 없을까 녹슬고 곪고 상처받은 가슴들을 서로 따스하게 다독여주는 그런 사랑의 세계는 없을까 겨울 저편 빛나는 햇살 한 올 오래도록 바라보면서 비로서... 사랑의 칼날에 아름답게 살해되는 그런 안녕의 세계는 없을까 없을까? 없을까?

[시인들 세상] 2009.02.10

마음으로 말하는 사랑 /하원택

"한 줄기 빛" Photo/Werol 마음으로 말하는 사랑 /하원택 당신의 사랑은 마음으로 말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 묵묵히 주고는 또 돌아서서 더 주고 싶어 안타까워 하는 사랑입니다 자신이 줄수있는 모든것을 주고도 욕심내어 더 주고 싶은 사랑입니다 한없이 주고싶은 욕심 때문에 늘 가슴에 슬픔이 가시지 않는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살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사랑으로 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시인들 세상] 2009.01.02

어머니! 꿈에라도 / 杜宇 원영애

어머니! 꿈에라도 / 杜宇 원영애 어머니! 꿈에라도 오시면 오신다면 흑백사진속 흰 치마 저고리 쪽머리 하고 오실까 오얏꽃 핀 들을 지나 개울건너 우리집 찾아 오실까 오월이면 감자 밭두렁 쇠비름 김 매러 호미 들고 오실까 어머님 눈감고 누워 삼삼히 그리운 고향집 그리며 아이들 뛰 놀던 앞마당 보라붓 꽃 웃는 장독대 둘러 보러 오실까 부엌 앞 샘물 길어 밥짖는 냄새 아궁이속 콩깍지 토닥토닥 불꽃 이는 소리 그 소리 지금도 들리실까 솥뚜껑 밥물 넘치면 행주로 눈물 닦아주며 화로 불 뚝배기 장 끓는 냄새 생각 나실까 여름 날 모깃불 날리는 툇마루 누워 흰 호청 덮어주시던 어머님 손길 어머니! 꿈에라도 오시면 오신다면..

[시인들 세상] 2008.12.21

늘, 혹은...조병화

늘, 혹은...조병화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인하여 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곳이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시인들 세상] 2008.11.19

산길에서/박종영

산길에서/박종영 산길에서 우르르 몰려와 발아래 궁구는 단풍잎 한 개를 주었다. 곱게 붉어진 입술, 여름내 부풀던 푸른 가슴이 가릉가릉 숨이 찬 모양이다. 주어 든 손이 시리고, 콧등이 시큰한 것은 설핏하게 스치는 늦가을 바람의 탓이려니 해도, 가늘게 잡히는 핏줄 바삭거리는 허리뼈의 울음을 달래보는 시간, 대리한 인생을 손에 쥐고, 나를 서러워하는 미망의 세월 안으로 가을 산은 또, 어이 눈물바람인가.

[시인들 세상] 2008.11.10

어느 날 오후 풍경 / 윤동주

어느 날 오후 풍경 / 윤동주 창가에 햇살이 깊숙이 파고드는 오후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본다 구름 한 점 그림처럼 떠 있다 세월이 어찌나 빠르게 흐르는지 살아가면 갈수록 손에 잡히는 것보다 놓아주어야 하는 것들이 많다 한가로운 오후 마음의 여유로움 보다 삶을 살아온 만큼 외로움이 몰려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Power of Love]

[시인들 세상] 2008.11.05

"왜냐하면"

"왜냐하면" /시.최건(崔健) 나 있네, 오직 내 안에 천상의 사닥다리 이승에 받처두고 그러나 더욱더 그대안에 나 있네 지상으로 내려오는 천상의 징검다리 이어놓고 그대의 평화 모두 모두 내 평화의 모든 것이기에 나 두렵네 그대 고통 지금 더 더욱 이승과 저승 오가는 길목에서 내 고통 모든것보다 두렵네 모두 모두 나 내안에 있음보다 그대안에 나 있음으로..

[시인들 세상] 2008.11.02